[한국의 기독교 성지순례] 미신타파·독립운동·주민구제… 예수님 이름으로 115년 헌신
(4) 인천 만수감리교회
인천은 서양 문물과 기독교 복음이 들어온 관문이었다. 그 증거로 인천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자유공원에는 ‘한미수호 100주년 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월미도로 가는 길목엔 ‘기독교 선교 100주년 기념탑’을 세웠다. 지금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지만 개항기엔 비행기 대신 배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제물포라고 불렀다. 전철 인천행 1호선 동인천역 건너편 자유공원 자락엔 인천 감리교의 모교회로 불리는 내리교회가 있고 남동구청 인근 만수6동엔 외국 선교사가 아닌 토박이 평신도가 세운 만수감리교회가 있다.
도당굿 유명 담방리를 복음 마을로
내리교회는 인천의 대표적인 기독교 성지로 잘 알려졌지만 만수감리교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전철 동암역에서 마을버스 525번을 타고 20여분 가다가 만수초등학교 앞에서 내리면 올해 창립 115주년을 맞는 역사교회를 만날 수 있다.
교회를 세운 이는 교인이 되기 전 한학 선생이었다. 그가 1890년대 황해도 해주에 갔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돌아와 학동에게 성경을 읽게 하고 가정예배를 시작한 것이 교회의 시초가 됐다. 그는 주일이면 내리교회에 출석하며 영성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교인이 된 지 6년 만인 1896년 10월 1일 만수동(당시엔 담방리로 불림)에 교회를 세웠다. 바로 만수감리교회를 지키고 있는 흉상의 주인공 복정채 전도인 이야기다.
복 전도인은 1856년 2월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의 후손으로 담방리에서 태어났다. 문인 가문의 출신인 그는 1895년 나주부 주사로 임명돼 부임했는데 의병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이듬해 교회를 세웠다. 이어 1898년 권사 표지를 받았고 3년뒤 전도사가 됐다. 그해 3월 복 전도인은 ‘충국애국의 단심(丹心)’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독립협회에 보냈다. 이 글로 복정채는 인천에서 유일한 독립협회 회원이 됐다.
“…남의 압제만 받아 남에게만 좋게 하고 우리나라 독립은 생각지 아니함이라. 우리도 바닷가에 엎디어 사나 개국 오백칠 년과… 이곳에도 또한 한 회(懷)가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의리를 믿는 교회라. 사람은 몇이 되지 못하나 옛말에 일렀으되 두 사람이 마음을 한 가지로 하면 그 이가 금은 끊는다 하였으니 귀 회원들이 애국애군하는 마음으로 죽을 때에 우리 회원들도 귀 회원들의 결단한 마음을 사랑하여 같이 죽기를 원하노라…”(독립신문 1898년 3월 29일)
그의 편지에는 나라의 온전한 독립을 바라며 애국애군의 마음으로 죽기를 각오한다는 독립협회의 주장에 동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리를 믿는 교회들과 함께 자신도 죽기를 원한다는 일사각오가 담겼다. 복 전도인은 1903년 지방순회전도사 자격을 받고 일하다가 1907년 갑자기 병을 얻어 별세했다. 당시 제물포를 관할하게 된 선교사 E 케이블은 복 전도인을 ‘위기에 처한 나약한 교회를 살리는 응급조사’로 표현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였다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을 여전히 믿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 6명을 화재로 잃는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믿음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한편 만수동 일대는 수백년 전부터 도당굿이라는 전래 굿이 명성을 떨칠 정도로 미신이 성행한 곳이었다. 그러나 복 전도인을 중심으로 한 교회가 세워지자 동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교회 창립 2년 뒤엔 장년만 150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다. 1900년에는 미산교회를 개척하고 이듬해엔 안산교회를 세웠다. 1904년에는 고잔교회, 1909년 방산교회, 1910년 율동교회, 1916년 신천리교회를 개척했다.
해방이 되면서 교회는 만수동 444번지로 옮겨서 새로 짓고 목회자도 단독으로 모셨다. 이후 47년 남촌교회, 48년 오봉산교회와 수산교회, 51년 구월교회, 55년 장수교회, 78년 서창교회, 86년 만수중앙교회가 개척 및 분립됐다.
회복과 변화로 기쁨이 되는 교회
만수감리교회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문맹퇴치와 미신타파, 주민구제와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15개 교회를 개척(분립)하고 5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한편 중국에 한중신학교를 설립해 지원하고 있다. 현재 신자는 1300여명이다. 부설기관으로 만수요양센터를 3년째 운영하고 있다. 72명 중 기초수급자가 절반이다. 나머지는 1, 2급 환자들이다. 매주 화요일은 요양원 목욕 봉사와 반찬 봉사 시간을 갖는다. 노인대학도 10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에어로빅, 당구, 한글·일본어반도 운영한다.
최근 부임한 성요한(41) 목사는 “새로운 100년을 이끌어갈 문화사역자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10년 동안은 교회학교 육성에 심혈을 쏟겠다”면서 “2020년엔 1만 명 전도를 목표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헌신하는 역사교회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 설립자 복정채 전도인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의리를 믿는 교회라… 귀 회원(독립협회)들이 애국애군하는 마음으로 죽을 때에 우리 회원들도 귀 회원들의 결단한 마음을 사랑하여 같이 죽기를 원하노라…”(독립신문 1898년 3월 29일)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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