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황세원 기자 日 지진피해지역 르포… “방사능 유출 후쿠시마 가로질러 꼭 가야 합니까?”

Է:2011-03-1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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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지진] 황세원 기자 日 지진피해지역 르포… “방사능 유출 후쿠시마 가로질러 꼭 가야 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센다이로 갔다

“왜 그렇게까지 가야 합니까?” 국제구호 NGO ‘해피나우’(이사장 길자연 목사) 팀이 지난 14일 일본에 입국해 쓰나미의 최대 피해 지역인 센다이로 향하는 내내 수백 번 들은 말이다. 오히려 지진 직후에 비해 도로 통행이며 휘발유 공급 여건이 훨씬 안 좋아졌고, 방사능 위험으로 국내외 언론들이 철수하기 시작한 시점에 굳이 센다이까지 가겠다는 데 대한 우려들이었다. 실제로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었고 기자를 포함한 6명의 구호팀 스스로도 그 질문을 수없이 되뇌었다. 그러나 막상 센다이에 도착해 보니 와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16일 오후 센다이 가모(浦和)천 강둑을 따라 쓰나미의 피해 참상이 늘어서 있었다. 센다이시립 나카노초등학교 앞에는 단독주택 한 채가 지붕의 뾰족한 부분을 바닥에 박은 채 뒤집어져 있었다. 어떤 집 위에는 자동차가 달랑 올라가 있었다. 강변 기린맥주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듯한 맥주캔이 셀 수 없이 흩어져 있고, 각기 어느 집의 부분이었을 목재들이 끝없는 쓰레기더미를 만들었다.

인근에 살았던 교민 유희순(53·여)씨는 “지진이 난 뒤 무서워서 한번도 안 왔다가 지금 처음 온 것”이라며 “가슴이 떨려서 못 보겠다”고 했다. 연달아 들려오는 소방차의 사이렌에 대해 “시체를 찾아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라면서 “저 소리만 들으면 마음이 내려앉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인근 동북후생연금병원을 지날 때는 “저 앞에 시체가 즐비했다”면서 “그 앞을 지나기 싫어서 집에 가 보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지진이 난 지 6일째이지만 길만 뚫려 있을 뿐 정리되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센다이 사랑의교회 안중식 선교사는 “지진만 해도 회복되는 데 20년이 걸릴 텐데 쓰나미까지 겹쳤으니 30년이 걸려도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구호팀이 와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지난 14일 입국한 직후부터 5000만원어치 생필품을 구입해 이곳으로 수송하려고 했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라면 생수 등 필수품 사재기 현상과 휘발유의 절대적인 부족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방법을 강구해 봤으나 물품이 준비되길 기다리려면 구호팀이 일정 내로 센다이까지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아이티 미얀마 필리핀 지진 때는 물론, 태안 기름 유출, 연평도 포격 때도 긴급구호와 장기적 지원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구호팀이지만 일본은 모든 상황이 달랐다. 또한 현지 선교사들조차도 구호팀의 센다이행을 말렸다. 너무 위험하고, 어차피 휘발유가 모자라 도착하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구호팀 내부에서도 숱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러나 해피나우 사무총장 박원영 목사는 “구호단체의 사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라면서 “가장 어려울 때 가야 한다”고 했다. 이영수 실장은 “엘리야가 가장 곤궁할 때 까마귀를 사용해 먹을 것을 공급하셨던 하나님처럼 우리도 ‘까마귀 작전’을 펼치려는 것뿐”이라고 했다.

운전과 통역을 비롯해 모든 일처리를 도맡은 후쿠오카 가스펠교회 및 국제교회를 담임하는 황석천 선교사는 ‘안전 우선’을 강조했지만 ‘선한 사명’을 존중해 최선을 다해 도왔다.

15일 밤을 후쿠시마 남서쪽 도키치현 사노시에서 묵고 16일 오전 출발할 때 일행은 “오늘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되 우리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럼에도 걱정을 떨치지 못한 채 길을 나섰지만 뜻밖의 행운이 겹쳤다. 문을 닫았다가 갑자기 영업을 시작한 주유소를 발견해 10분 만에 주유를 마치고 여분의 휘발유까지 살 수 있었다. 또 우쓰노미야교회 마영렬(47) 선교사의 귀띔으로 도키치 현정에서 ‘긴급’ 비표를 받아 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있었다.

문제는 고속도로로 갈 경우 한창 방사능 위험이 커지고 있는 후쿠시마현을 관통한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눈이 쏟아졌다. 창문을 완전히 닫고 마스크까지 쓴 채로 일행은 묵묵히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센다이 사랑의 교회. 아침까지만 해도 “오지 말라”고 했던 안 선교사는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다. 인근 가게는 거의 문을 닫고 교회 맞은편의 대피소인 사이와이초 미나미초등학교에서 800여명 피난민들이 하루에 오니기리(주먹밥) 한 개, 바나나 한 개로 연명하는 터라 승합차의 빈 자리에 싣고 온 얼마 안 되는 식료품과 생필품, 휘발유에도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여기에 안 선교사를 파송한 수원삼일교회의 송종완 목사가 도키치 인근에서 물품을 구해 다음 날까지는 들어올 것이라고 전하자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세상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 소명을 위해 두려움 없이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 현장이 보여주고 있었다.

센다이=글·사진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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