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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백도명] 참된 삶과 구제역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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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구제역 파동이 끝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500만여 마리의 동물이 살처분됐으며, 4000개 이상의 매립지가 생겨나게 됐다. 구제역과 조류독감이라는 감염병 전파를 살처분으로 차단하는 방역의 문제는 이제 단순히 축산동물 방역의 문제로만 취급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를 들여다보아 그에 기여한 원인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에 대한 균형을 잡는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살처분 통한 방역모델 실패

단적으로 이번 살처분을 통한 구제역 방역은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을 여러 측면에서 지적할 수 있겠지만 가장 먼저 초기 구제역 감염의 범위와 상황에 대한 판단, 그 대처 방안으로 수행된 방역 활동의 내용과 방식 등에 있어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방역 활동은 구제역 전파와 차단 모델에 바탕을 두고 이뤄진다. 현재까지도 정확한 전파경로를 모르는 상태에서 베트남 여행을 통해 묻어 올 수 있었다는 한 가능성만을 바탕으로 그에 반하는 증거들을 무시한 채 차단을 도모했던 것이 무리였다. 공기를 통한 전파, 야생동물을 통한 전파, 혹은 사료를 통한 전파 등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다른 농장 동물들에게서도 자연감염의 증거가 있었다는 점은 초기 방역의 대상과 내용 판단에 좀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살처분의 과격함에 비해 방역 종사자들과 분뇨처리 차량의 이동에서 보여준 안이함이나 살처분 진행의 허술함 등은 살처분을 통한 방역 모델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근거로 보인다. 결국 이번 사태는 살처분을 통해 방역이 이뤄진다는 모델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가정과 과정들이 충실히 지켜져야만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이러한 분석은 여러 전파 경로의 가능성과 함께 균에 노출된 모든 동물이 감염되거나 혹은 사망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왜 우리 사회에서 급속한 전파가 여러 곳에서 진행되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한다. 특히 예방접종이나 자연감염을 통해 얻어지는 특이면역 외에도 일반면역 또한 질병 전파에 중요하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축산방식이 질병감염에 대한 저항성을 얼마나 낮추어 놓았는지를 반성하게 한다.

또한 보건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의 방역의 윤리성을 생각하게 된다. 여름에 해충방역을 위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분무하는 방역이 실제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해충에 사용되는 농약의 독성이 사람에게도 작용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는 동의도 얻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집행되는 방역행위를 반성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구제역의 경우에도 일부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불가피하더라도 동물을 대신하는 사람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과 실제 해가 초래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얼마나 윤리적이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한 사회의 건강을 판단하는 척도는 사회의 잠재적인 변화 가능성을 달성하면서도 그에 따른 변화에 적응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지속 가능성에 달려 있다. 한 국가의 경제적인 건강을 이야기할 때 경제성장률과 함께 물가상승률을 언급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먹거리 둘러싼 생태 고민할 때

축산업은 단순히 축산동물 사육의 문제가 아니라 사료공급, 농업 및 유통업, 비료생산 및 농기구업, 그리고 이를 가동시키기 위한 석유화학 공정 및 에너지 등이 광범위하게 연관된 산업이다. 우리의 식탁에 고기반찬이 오르기 위해서는 단순히 축산동물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 생태계와 관련된 이해관계들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 서 있다는 위치를 고려할 때 인간 먹거리의 문제는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그 파장이 매우 크고 넓은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점에서 지금 시점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들이 지켜지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백도명(서울대 교수·보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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