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능화된 현대사회를 사는 이들의 비명… 백영옥 ‘아주 보통의 연애’

Է:2011-03-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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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능화된 현대사회를 사는 이들의 비명… 백영옥 ‘아주 보통의 연애’

드라마로 제작된 ‘스타일’ 등 장편에 매진했던 소설가 백영옥(37·사진)이 첫 소설집 ‘아주 보통의 연애’(문학동네)를 냈다. 8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영수증 처리 담당 직원, 갈빗집 사장, 청첩장 디자이너, 기업의 CEO, 출판사 편집자, 인터넷서점 북에디터 등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직업이나 직책 뒤에 죽은 듯 숨어 있다가 그 정체성을 버텨온 심리적 장막이 사라지자마자 공황상태에 빠지고 마는 연약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였든 가을에서 겨울로 스러지는 길목이었든 중요치 않다. 다만 언젠가 나도 내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으리란 희망이 점점 시들어갔다는 것.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만기가 된 주택청약부금이나 의대에 들어간 아들만으로도 행복에 겨워야 한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던 순간의 밤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흐음…뱃속에서부터 한숨이 흘러나왔다.”(155쪽)

단편 ‘강묘희미용실’에 등장하는 주인공 강묘희의 독백이다. 직업은 출판사 편집자다. 그녀는 전 남편이자 유명 소설가인 H를 대신해 그가 쓴 원고의 쉼표와 마침표를 잘못 끼워 넣어 뻑뻑한 문장을 뜯어내고 최종 마침표를 찍으며 ‘대신’ 인생을 살아간다. 작가 지망생이었지만 타인의 문장이나 만지며 살아가는 그녀는 인터넷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을 쳐본다. 낯선 상호명 하나가 뜬다. ‘강묘희미용실 경상남도 사천시 선구동 801-22’. 그녀는 출판사에 사표를 낸 뒤 그 미용실을 찾아가는 모험을 강행한다. 자신과 이름이 같은 미용사에게 지긋지긋한 긴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그녀의 정체성 찾기는 시작된다.

단편 ‘가족 드라마’엔 갈빗집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엄마에게 아버지는 요식업계의 인력망이 적힌 ‘낡은 수첩’ 하나의 가치로 요약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엄마가 예단하는 그런 남자가 아니다. 어느 날 가출을 감행한 아버지로부터 온 편지에는 “이미 딴 살림을 차렸고 암에 걸려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가족 가운데 누구도 아버지가 어떤 욕망을 가진 사람인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청첩장 살인사건’의 주인공은 매일 정성들여 누군가의 결혼식 청첩장을 만들면서도 그 어떤 결혼식에도 초대받지 못한다. 표제작에 등장하는 잡지사 관리팀 여직원 ‘나’는 한 남자를 짝사랑하지만 그 남자가 소비한 흔적이 담긴 각종 영수증으로 그의 사생활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한다.

백영옥의 소설은 오로지 직업일 뿐인 특정 역할 뒤로 숨어버린 보통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과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진짜 정체성을 끄집어낸다. 그것은 명함과 프로필로 상징되는 직능화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인 것이다. 당신의 직업은 무엇이냐고 물을 뿐,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는 이 간접 화법의 세상에 대한 섬세한 고발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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