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숨긴 붉은 반점으로 떠오르는 어머니… 박완서 큰딸 호원숙씨 회고

Է:2011-03-0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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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숨긴 붉은 반점으로 떠오르는 어머니… 박완서 큰딸 호원숙씨 회고

“나는 엄마의 맨발을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양말을 신으셨고 종아리가 드러나지 않는 긴 치마나 바지를 입으셨고 불투명한 스타킹을 신으셨다. 엄마는 딸들과 공중목욕탕에 간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앉아 버선을 신으실 때 엿보았던 엄마의 발에는 흉터처럼 빨간 상처가 있었다.”

지난 1월 22일 별세한 소설가 박완서씨의 큰 딸 호원숙(57)씨가 월간 ‘현대문학’ 올 3월호에 기고한 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글 ‘엄마의 발’의 일부다. 지난해 5월, 어머니가 점심을 먹으러 외출했다가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호씨는 병원 응급실에서 어머니의 몸을 처음으로 보았다고 털어놓았다. 어머니의 발에 있던 붉은 반점은 넓적다리를 지나 엉덩이까지 퍼져 있었던 것이다. 평생 딸에게조차 보이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붉은 반점은 그렇게 드러나고 말았다.

박완서씨는 몇주 후 깁스를 풀었고, 딸과 함께 크로아티아 여행을 가자고 약속한 10월의 어느 날이 다가왔을 때 “나라도 집을 지켜야지”라며 따라나서지 않았다. 결국 호씨는 혼자 크로아티아로 떠났고 그곳을 여행하면서 어머니에게 줄 양말을 사고 있을 때 동생에게서 뜻밖의 전갈을 받는다.

어머니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담낭에 암이 발견되어 곧 수술을 해야 한다는 비보였다. 그러나 박씨는 “당장 귀국하겠다”는 딸에게 “평소 복용하던 아스피린 기운이 다 빠질 때까지 수술을 미뤄야 하니 일정대로 여행을 마치고 오라”고 당부했다. 딸이 귀국한 다음날 다섯 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고 2개월여 동안 투병하던 그는 임종 이틀 전까지 병상에서 일기를 썼다. 딸은 그 일기 또한 공개했다. “살아나서 고맙다. 그동안 병고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죽었으면 못 볼 좋은 일은 얼마나 많았나. 매사에 감사. 점심은 생선초밥으로 혼자 맛있게.”

산문집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를 펴낸 작가답게 호씨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길에 동행했던 애잔한 마음을 가감 없이 진술하고 있다. 월간 ‘현대문학’ 3월호가 마련한 ‘박완서 추모특집’은 마치 지상에 봄이 다시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그가 없는 빈 자리에 조성한 추억의 꽃밭을 연상케 한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김화영을 비롯, 소설가 구효서, 화가 윤석남, 의학박사 이시형, 이인호 전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 이해인 수녀, 영문학자 전경자, 탤런트 최불암 등이 그 밭에 꽃을 심었다.

다른 문예지들도 ‘박완서 추모특집’을 앞다퉈 다루고 있다. 계간 ‘문학과사회’ 올 봄호는 문학평론가 김치수씨의 ‘역사의 상처와 문학적 극복’이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그의 작품에는) 우리가 감추고 있거나 모르고 지나쳐버린 상처를 우리 각자의 것으로 만들어준 감동적인 체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계간 ‘실천문학’ 올 봄호는 문학평론가 이선미 이경재, 시인 민병일, 소설가 심윤경 등이 쓴 추모의 글을 실었다. 월간 ‘문학사상’ 3월호도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나보다 더 아픈 타인의 얼굴을 찾아서’를 통해 “개인의 상처를 시대의 상처로 전이시키는 이야기의 힘이 박완서 문학의 본질”이라고 분석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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