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생존작가 처연히 인간을 묻다… ‘살아남은 자의 아픔’
살아남은 자의 아픔/프리모 레비
“태양과 별과 행성들은 언제나처럼 자기 궤도를 유지하며/지구별 역시 정교한 우주의 이치대로 돌고 돈다./하지만,/우리 인간은 아니다./반란의 씨앗에다 지능까지 높다는 그 멍청한 인간들은/항상 불안하고 탐욕스런 나머지 마구 짓밟고 파괴해왔다.”(‘인생연감’ 부분)
1945년 10월, 평균 생존기간 3개월인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 프리모 레비가 87년 4월 11일 투신자살 직전에 남긴 마지막 시다. 아우슈비츠에서 풀려난 2년 뒤 ‘세계 10대 회고록’으로 꼽히는 ‘이것이 인간인가’를 출간한 것을 비롯, 자신의 처절한 경험과 사유를 시와 소설 등 다양한 형식의 기록으로 남겼던 그가 따로 남긴 유서는 없었으므로 이 시는 결국 그의 유서가 되고 말았다.
‘살아남은 자의 아픔’(노마드북스)은 프리모 레비가 생전에 펴낸 두 권의 시집 ‘쉐마’와 ‘브레마의 선술집’에 수록된 82편 가운데 60여편을 가려 묶은 시집이다. 아우슈비츠에 갇힌 채 며칠에 한번씩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지척에서 목격하고, 그 연기에서 떨어지는 인간의 재를 코로 들이마시면서도 레비는 내면으로 더 깊게 침잠한다.
“단 하나의 목소리와 단 하나의 노선으로/정해진 시간에 떠나야하는 기차보다/더 슬픈 게 있을까?/그 어떤 것도 이보다는 더 슬프지 않다.//아마도 두 개의 막대기 사이에 묶여/서로를 바라보지도 못하는 마차만이/유일한 예외일 것이다./물론 그 인생은 그저 앞으로 걷는 것뿐이다.”(‘기차는 슬프다’ 부분)
레비의 시는 모든 비유의 잎을 털어낸 겨울나무처럼 처연하다. 그는 나치의 학살을 격렬하게 고발하기 보다는 오히려 안으로 내면화시킴으로써 나치를 하나의 현상 이전에 본질로서 탐색하고 있다.
“모두가 서로의 적이고 내면의 경계마저 분열돼/이미 오른손은 왼손의 적으로 변해버렸다./하지만 어서 일어나라, 노병이여/이제는 나치가 아닌 그대 안의 적들이여!/아직도 우리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빨치산’ 부분)
이 작품 속의 ‘적’은 나치가 아니라 ‘내 안의 적’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 나치들이 내부로 침투해 왕성하게 암약하고 있음을 꼬집고 있다. 파쇼와 싸우다가 파쇼로 변하듯, 나치와 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나치로 변하지 않았는지 아프게 묻고 있는 것이다. 편역자는 1987년 장편서사시 ‘한라산’으로 필화사건을 겪었던 이산하 시인.
정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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