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단 풍성함 더하는 일곱 빛깔 단비…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일곱 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김숨 외 6인/열림원
“아직 읽기 전인데 주말에는 좀 쉬고 내일부터 출근할 때 한 편씩 읽을 생각이다. 사실 나는 회사까지 거리가 꽤 멀어서 거의 1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낸다. 긴 소설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짧은 소설집이 딱 좋다.”
한 블로그에 올려진 소설집 ‘일곱 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열림원)에 대한 소회다. 김숨, 김미월, 장은진, 윤이형, 황정은, 김이설, 한유주 등 일곱 명의 여성작가가 ‘비’를 테마로 쓴 소설집이다. 1982년생 한유주를 제외하면 모두 문단 데뷔 5∼7년차의 30대 여성 작가들이다. 그동안의 테마소설집이 독신, 자살, 분노와 같은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다루어왔다면 이 소설집은 물리적인 대상인 ‘비’를 소설적 오브제를 끌어들여 비가 갖고 있는 다양한 심상을 독자적인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장은진의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를 신은 고양이’는 허공에서 흩날리는 티슈를 통해 결혼직후 곧바로 파혼한 후 부모 집에 얹혀사는 남자의 고립감과 단절감을 형상화한다. “나는 티슈를 날려보내는 사람이 막연하게, 여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슈는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친근한 물건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왜 티슈를 날려 보내는 것일까.”(18쪽)
티슈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지만 어디로 떨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수직으로 낙하하는 비와는 다르다. 비가 우울과 부정의 상징이라면 티슈는 그 가벼움으로 인해 한없이 무거운 세상을 어느 순간 몽환적으로 바꿔놓는다. 그렇기에 소설 속에서 줄곧 비가 내리는 장면의 설정은 티슈의 몽상적 부조감을 효과적으로 돕는다.
김숨의 ‘대기자들’은 비가 사회와 맺는 은밀한 속성을 일러준다. 소설에는 치과 진료가 언제 시작될지, 자신의 대기 순번이 끝까지 보장될 지 알 수 없어 불안한 1인칭 화자가 등장한다. “내가 치과 병원을 찾아올 때만 해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가 내리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때로 비는 예고 없이 내리기도 하니까. 창밖을 바라보는가 싶던 여자가 느닷없이 비명을 질렀다.”(54쪽) 모든 것을 유예시키고 대기하게 만드는 반촉진제로서의 성질을 갖는 비와 치과병원에 앉아 순번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의 심리를 비유한 작품이다.
김미월의 ‘여름 팬터마임’은 고교 시절 백일장에서 남의 시를 베껴 장원에 당선된 한 여자의 자책감을 그려보인다. 하필 비가 내린 날 백일장이 열렸다는 점에서 비는 어떤 사건의 전조로 자리잡는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땅속으로 꺼져버리고 싶었다. 백일장에 얽힌 모든 기억을 말소시키고 싶었다. 진은 모두가 자신을 비웃고 비난하리라 지레 겁을 먹었다.”(102쪽)
황정은의 ‘낙하하다’는 떨어지고 있는 비와 소멸하고 있는 생의 관계를 병치한다. “애초 빗방울이란 허공을 떨어져 내리고 있을 뿐이니 사람들이 빗소리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빗소리라기보다는 빗방울에 얻어맞은 물질의 소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런 물질에도 닿지 못하는 빗방울이란 하염없이 떨어져 내릴 뿐이라는 이야기였다.”(204쪽)
삼년 째 비가 오고 있다. 아니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비인지 사람의 생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모호해진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삶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낙하하고 소멸하는 삶은 충동을 꿈꾼다. 충돌 이후의 상승을 꿈꾸는 삶에 대한 비유가 절묘한 작품이다.
이밖에도 김이설의 ‘키즈스타플레이타운’은 태풍이 온 날, 나쁜 일이 함께 닥친다는 전조의 기운을 전달하고 있다. 윤이형의 ‘엘로’는 사랑을 찾는 마법의 실마리로 비를 묘사하고 있고, 한유주의 ‘멸종의 기원’은 비에 개입된 주술적인 힘에 대해 쓰고 있다. 일곱 편의 비에 관한 기상도는 그 자체로 우리 문단의 다채로움에 값한다. 일독을 권한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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