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고상두] 헌법이 없는 나라 영국
영국에는 헌법이 따로 없다. 영국 국민은 1215년의 마그나카르타, 1628년의 권리청원, 1689년의 권리장전이 영국의 헌법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이들 문서는 미국과 유럽으로 전파되어 근대 헌법의 원전이 되었다.
헌법은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그 다음에는 유럽으로 건너와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헌법이란 국가통치에 관한 기본규범이다. 미국은 건국에 의해, 프랑스는 혁명 이후 헌법을 제정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오늘날 모든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헌법의 내용을 영국인은 법률로 가지고 있다.
영국은 거의 1000년 전에 만들어진 왕권 제한법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여 기본권 보호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적 경험에서 확립된 불문율이 민주주의의 실천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인이 즐겨 쓰는 ‘신사협정’이란 용어는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묵시적 합의를 말한다.
합의·상식으로 민주화 이뤄
영국사회는 온화하고 점진적이지만, 정치발전에 필요한 모든 일을 이루어내었다. 합의와 상식을 바탕으로 소모적 논쟁을 최소화하면서 민주화를 이룩하였다. 오랜 경험이 가르쳐주는 가장 합리적인 길을 걸어온 것이다.
이러한 문화 때문에 영국에서는 오래 된 것이 좋은 것으로 간주된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의회를 만들고 민주주의를 꽃피웠지만, 아직도 왕실이 권위를 유지하고 있다. 빅벤 시계로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는 고딕 양식의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명패도 팔걸이도 없는 긴 의자에 의원들이 비좁게 앉아서 국사를 논하고 있다.
영국에서 개혁은 단칼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법과 제도는 도구와 같아서 오래 사용해야 손에 익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국의 민주주의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차근차근 쌓아올린 견고한 성과 같다.
1987년에 만들어진 우리 헌법이 개정 논의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정권부터 제기된 개헌의 가장 큰 이유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이면서 내각책임제를 가미한 절충형 권력구조를 택하고 있다. 대통령은 입법부의 고유권한인 법률제안권을 공유하고, 국회의원을 장관에 임명할 수 있다. 반면에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한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은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권력분립이 명확한 미국식 순수 대통령제로의 복원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권력구조 개선방안을 우리의 통치경험에서 찾을 순 없을까? 제왕적 권력의 문제는 한국의 정치사에서 항상 고민거리였다. 조선은 왕도정치를 국가목표로 내세워 국왕의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제한하기 위해 신료의 독자적인 권한을 광범위하게 인정하였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특징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국정을 책임지는 재상중심의 정치였고, 많은 명재상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조선의 군왕은 정치권력의 정점에 위치하였으나 현실정치는 모든 관료를 통솔하는 재상에 의해 이루어졌다. 3정승은 합의제로 의사결정을 하였고 국왕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이러한 전통이 현대 한국정치에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총리는 대통령의 그늘에 있고, 부총리는 명멸을 거듭하고 있다.
진정한 개헌방향 고민할 때
헌법은 사회 현실의 부단한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헌법과 현실 간에 괴리가 발생할 경우에 개헌을 고려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개헌이 급박하지 않은 이유는 가까운 장래에 통일이라는 개헌의 기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라도 현행 헌법을 더 사용하고, 진정한 개헌의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보장하는 불문율을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는 건국, 민주화, 통일 등 충분히 빈번하게 헌법을 손질해야 하는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고상두 연세대 교수 유럽지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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