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재희] 어느 노교수님의 퇴임식에서
나도 그분을 가까이 쫓아가고 있는데, 그분께 ‘노’교수란 타이틀을 붙이기가 왠지 당황스럽다. 마냥 청년일 것만 같던 그분이 어느덧 60이 되셨다는 소리를 들으니 세월이 참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지금의 안정된 직장을 퇴임하시는 그분에게는 청년의 기백이 여전하시다는 생각을 했다.
그분은 퇴임식에 음악회를 열었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시던 그분답게 아름다운 음악으로 그곳 직장을 마무리하고 싶으셨나 보다. 바이올린과 첼로, 기타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흔히 들을 수 없는 쳄발로와 리코더의 음률이 건조한 학교 건물을 부드럽게 감쌌다. 교수님의 떠남을 섭섭해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고운 선율이 부드럽게 달래줬다.
음악을 들으며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30년 전 유학시절이 떠올랐다. 우리는 유학시절 같은 학생 아파트에 살면서 가깝게 지냈다. 신혼시절, 미숙하고 어설펐던 우리 부부를 그분과 사모님은 사랑으로 품고 인내로 참아주셨다. 겨우 예수님을 알고 뒤뚱거리던 우리에게 그분들은 어떻게 예수님 닮게 사는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셨다.
가까이에서 본 그분들의 베풀고 섬기는 삶은 신선한 충격과 큰 도전이었다. 쉽지 않은 만남의 축복을 나는 그때 그분들을 통해 누렸었다. 그분들을 주축으로 삭막했던 지역에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이 생겨났고, 부인들을 주축으로 한 자매모임도 생겨났었다. 복음이 자라나며 우리가 살던 그 지역이 따뜻하고 환해졌던 것을 기억했다.
그때도 그분들은 음악을 좋아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 때면 이웃을 집으로 불러 함께 음악을 감상하며 정감 있는 교제를 했었다. 그때 들었던 노래는 기억에 없지만, 훈훈한 마음은 아직까지 내 마음에 진하게 남아 있다.
여름에는 중고 에어컨을 사서 달고 젊은 아기 엄마들을 불러 모아 시원하게 지내도록 했다. 유학생이 음향기기를, 또 에어컨을 샀다고 수군거리던 사람들에게 진정한 나눔이 무엇인지 그분들은 묵묵히 삶으로 보여주셨다. 많은 사람을 집에 들여 베풀고 섬기기보다 차라리 음향기기나 에어컨을 갖지 않고 사는 편이 훨씬 편했겠지만, 그분들은 참 미련하게 사셨다. 그분들을 통해 갖지 않음이 때로는 갖고 나누는 것보다 훨씬 이기적일 수 있음을 배웠다.
퇴임식에서 나는 오랫동안 그분들과 제대로 된 교제를 하고 지내지 못했음을 알았다. 내 마음속에 그분들을 향한 깊은 감사와 사랑이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나의 게으름과 무심함을 후회했다. 기회가 있을 때 함께함의 축복을 누려야 하는데, 나는 이렇게 뒷북을 치며 아쉬워한다.
지금보다 먼 지역으로 떠나시지만, 아직 손을 뻗치면 닿을 수 있는 같은 땅에 사는 게 다행이다. 주어진 기회를 소홀히 하다가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야 할 그때, 나는 풍성하게 사랑을 주고받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재희(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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