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키운 폭력, 폭력을 키운 인간…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일곱 개의 고양이 눈/최제훈/자음과모음
전 세계 시청률 1위를 기록했던 미국 드라마 ‘CSI’의 중심 스토리 라인을 이끄는 것은 수사관이 아니라 해부실에 누운 사체다. 드라마는 사체 해부과정을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죽음 자체를 타자화하는 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런 반면에 실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상화된 죽음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미디어 속의 죽음으로 타자화되고, 살인 사건은 머나먼 타인의 죽음으로 치부됨으로써 진짜 죽음에 대한 성찰은 끊임없이 미뤄진다. 이제 죽음은 그 자체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죽음의 이미지는 잘 팔리는 대중문화 콘텐츠로서 집단 소비되기에 이르렀다.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으로 주목받았던 소설가 최제훈(34)의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이렇듯 죽음조차도 대중소비문화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사회에서 죽음의 실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문예 계간지 ‘자음과모음’에 ‘픽스업’이라는 장르로 1년여에 걸쳐 연재된 소설이다. ‘픽스업’은 중편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형식으로, 연작 소설과는 개념이 다른 장르다. 최제훈은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간직한 중편 네 개를 커다란 틀 안에서 하나의 장편으로 승화시킨다.
산장에 모인 여섯 명의 사람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연쇄살인에 흥미를 느끼는 자들의 동우회인 인터넷 카페 ‘실버 해머’에서 선택받아 초대되었다는 사실이다. 카페 주인인 ID ‘악마’의 부름을 받고 모인 여섯 명은 함께 ‘악마’를 기다리지만 정작 그는 나타나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 실재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게임이 시작된다.
위험을 감지한 이들은 마치 서로에게 의지하는 듯하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그것이 곧 또 다른 위험이 되어 서로를 압박한다. 중편 ‘여섯번째 꿈’을 필두로 ‘복수의 공식’ ‘π’ ‘일곱 개의 고양이 눈’으로 연결되는 유기적인 고리 안에서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에스키모들이 늑대를 사냥하는 법을 아시나요? 간단합니다. 짐승의 피를 묻힌 칼을 얼음 위에 꽂아두고 기다리는 거예요. 피 냄새를 맡고 다가온 늑대가 칼날에 묻은 피를 핥아먹습니다. 그러다가 제 혀를 베여 피를 흘리죠. 하지만 차가운 금속에 이미 혀의 감각이 마비된 늑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칼날에 계속 묻어나는 자신의 피를 핥아먹고, 그것을 핥느라 또 피를 흘리고 또 핥아먹고…”(‘복수의 공식’ 중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호수공원을 산책하다가 괴한에게 끔찍한 린치를 당한 기억을 잊지 못해 삶 자체를 증오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전도유망한 법대생 주인공의 독백이다. 삶에 대한 증오, 타인에 대한 복수심, 자신의 결핍에 대한 불만, 그것이 그의 삶을 추동하는 원동력이고 이러한 사정은 다른 인물들에게서도 각자 다른 패턴으로 나타난다.
소설은 어둡고 음울한 소재인 죽음을 다루면서도 우울이나 비탄의 정서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오히려 죽음을 블랙 코미디처럼 묘사하고 때로는 죽음의 과정을 어떤 감정도 배제한 채 냉혹한 추리극으로 만든다. “‘사람 죽여봤어요?’ 연우의 돌발적인 질문에 민규는 멍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전 죽여봤어요.’ ‘…정말요?’ ‘번역하면서.’”(‘여섯번째 꿈’ 중에서)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연우가 번역을 하면서 이른바 ‘종이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은 아무런 외적 동인 없이도 폭력 그 자체를 동경하는, 추상화된 폭력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연우는 종이 살인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은밀한 지휘자가 된 것 같은 짜릿한 쾌감을 맛본다. 번역이라는 글쓰기를 통해 살인이라는 폭력을 실천한 것이다.
이렇듯 이 소설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예찬하게 되는 주인공의 심리를 통해 폭력을 인간 본성의 기원 그 자체로 탐구하고 있다. 폭력의 욕망이 발화하는 지점을 찾아내 연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점이 작가적 상상력의 탁월함이다. 각 장마다 삽입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 하면 네 편의 연작영화를 보듯, 각 작품에 맞는 이미지와 음원을 보고 들을 수 있다. QR코드와 스마트폰의 접목이 종이책의 한계를 뛰어넘는 문학서적의 뉴트렌드로 자리 잡을지도 주목된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