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현동] 늙은 어버이를 어찌할꼬?

Է:2011-02-0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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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박현동] 늙은 어버이를 어찌할꼬?

“인간의 수명은 길어만 간다. 준비된 늙음을 맞이할수 있도록 해야”

#1. 늙은 어머니는 설 전날 바리바리 싸들고 서울 큰아들네로 왔다. 고기도 굽고, 과일도 샀다. 전도 부쳤다. 텃밭에서 심은 채소 내다 팔고, 남의 집 일 도와주며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장을 봤다. 손자 녀석들 줄 세뱃돈도 그렇게 마련했다. 얼마 전에는 혼자 농사지어서 만든 목돈을 큰아들이 급하다고 해서 가져갔다. 딸들이 알면 시끄러워질까봐 쉬쉬했다.

작년 설엔 막내아들이 모시러 왔으나 이번 설엔 고속버스 타고 혼자 왔다. 며느리는 “어머님, 오셨어요”라는 한마디 말만 던지듯 내뱉었다.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무뚝뚝한 성격 탓이라지만 그래도 살갑게 대해 주면 좋으련만…. 서운한 맘이 들었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게 더 맞다. 아들 내외가 당신 때문에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막내아들은 설날 점심때쯤 처갓집 세배 간다며 떠났다. ‘장가간 아들을 아들로 생각하면 팔불출’이라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서운하기 짝이 없다. 딸만 줄줄이 낳는 바람에 시어른들로부터 구박도 많이 받았다. 그래도 이번 설만큼 서럽지 않았다. 뒤늦게 본 아들, 금이야 옥이야 키웠는데….

#2. 늙은 아버지는 오래전에 상처(喪妻)를 했다. 얼마 되지 않은 땅뙈기지만 당신 앞으로 돼 있을 때는 괜찮았다. 여름철에도 하얀 모시적삼 곱게 다려 입고 동네를 다녔다. 아들 며느리 모두 효자(孝子) 효부(孝婦)라고 이웃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논밭을 자식들에게 물려준 뒤 사정이 달라졌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죽을 때까지 재산 물려주면 안 된다’라는 말은 들었지만 딱한 사정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설을 앞두고선 이집 저집 눈치 보며 전전했다. ‘작은 며느리가 하도 오라고 해서’라고 둘러댔지만 이웃들이 그 사정을 모를 리 없다.

#3. 노모는 안절부절못했다. 설 전날 어머니 모시는 문제로 형제들이 언성을 높인 것이다. 형은 동생이 미덥지 않고, 동생은 형이 마뜩하지 않다. 며느리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귀는 어두워도 자식들이 언성을 높인 이유는 안다. 젊어서는 엄한 시부모 모신다고, 시부모 돌아가신 뒤에는 성정(性情)이 불같은 남편 뒤치다꺼리 하느라고, 늙어서는 자식들 눈치 보느라고 고된 삶을 이어간다. 한때 큰아들 집에서 살았지만 내 집만 못했다. 그날 저녁 노모는 “내 집이 편하다”며 시골집으로 가셨다. 세상이 그렇겠거니 하기엔 너무도 불편한 진실이다.

긴 설 연휴가 끝났지만 마음은 영 개운하지 않다. 고향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부모에게 얹혀사는 청년 백수나 나이 마흔이 되도록 장가 못간 늙은 총각 이야기는 그렇다 치더라고 늙은 어미, 아비의 슬픈 이야기가 심란하게 만든다.

독거노인 현실은 더 가슴 아프다. 현재 우리나라 독거노인은 100만명을 넘는다. 그러나 대다수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마저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더 슬프다. 가족들이 있는데도 죽음을 지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숨진 뒤 한참 만에 발견돼 언제 세상을 하직했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이번 설을 전후해서도 고단한 삶을 쓸쓸히 끝낸 이들도 적지 않았다.

100세 시대가 예고될 정도로 인간의 수명은 길어만 간다. 하지만 준비된 늙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끼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수두룩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보면 2008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빈곤율(65세 이상 노인 중에서 월소득이 해당국 중위 소득의 50% 미만인 비율)은 45.1%에 달한다. 미국(23.6%) 일본(22%)의 2배 수준이고, 프랑스(8.8%)에 비해서는 무려 5배를 넘는다.

현실이 이럴진대 정치권은 급식타령에 개헌타령이다. 무책임의 극치다. “빨리 죽어야 되는데…”를 입버릇처럼 내뱉을 수밖에 없는 늙은 어미, 아비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박현동 편집국 부국장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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