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호랑이 엄마

Է:2011-01-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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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이 지배하던 16세기 필리핀은 화교들의 천국이기도 했다. 화교 사회에 부채를 진 스페인은 마닐라 화교의 지도자 리탄에게 시비를 걸어 체포하고 금괴 4만개가 포함된 막대한 재산을 약탈했다. 명나라 조정이 소식을 듣고 조사단을 파견하자 스페인 정복자들은 중국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그 수가 2만4000에서 2만6000으로 추정된다. 1603년의 일이다.

필리핀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일대는 일찍부터 중국인들이 진출해 상권을 장악했다. 이들의 왕성한 경제활동은 부(富)의 불균형을 불렀다. 이들을 시기한 권력자와 원주민들은 종종 화교 대량학살을 저질렀다. 2차대전 중에 동남아에 진출한 일본군도 마찬가지였다. 점령통치에 비협조적이거나 중국 국민당에 후원금을 보낸 화교들을 색출해 고문하고 처형했다. 싱가포르에서만 7만여명이 살해됐다.

중국인들의 동남아 진출은 그 시대의 ‘세계화’였다. 필리핀 화교 출신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저서 ‘불타는 세계’(2002)에서 20세기 후반의 세계화가 세계 곳곳에서 민족 갈등과 빈부 격차를 심화시켰다고 진단한 바탕에는 동남아 화교들의 집단기억이 있었을 것이다. 추아의 두 번째 저서 ‘제국의 미래’(2007)는 제국의 성공이 소수자에 대한 관용 여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성공한 화교 추아가 새해 벽두 미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추아가 두 딸을 성공적으로 키웠다는 ‘중국식 육아법’에 대한 논란이다. 책 출간을 앞두고 추아가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이 불을 지폈고 그 덕에 ‘호랑이 엄마의 군가(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라는 추아의 세 번째 저서는 발매 당일 아마존 판매순위 6위에 오를 정도로 대폭발했다.

추아의 육아법은 한국의 엄마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다. 규제와 강요, 주입식 교육, 성적 지상주의, 폭언, 자식 의견보다 부모 의견 앞세우기 등. 한 마디로 자식을 닦달하는 것이다. 미국인이 보면 영락없는 자식 학대다.

슈퍼 지성을 지니고 소수자에 대한 관용을 호소하는 추아가 가정에서는 억압과 강제의 육아법을 실천하고 이를 미국사회에 자랑하는 건 역설(逆說)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교육법 때문에 15∼24세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다른 인종에 비해 자살률이 월등히 높다”고 비판했다. 미국이라는 문명사회가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를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다. 호랑이도 소수자이므로 관용해야 하나?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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