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전문인 선교사 활약… 주철기 전 주불대사 부부
선교 전문가들은 일찍부터 현대 선교의 바람직한 방향으로 평신도 전문인 선교를 꼽아왔다. 문화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유연성과 전문성, 외부 지원 없이도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자립기반을 갖췄다고 보기 때문이다.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종족의 폐쇄성도 전임 사역자보다는 평신도 전문인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주철기(64) 장로와 김중자(60) 권사 부부 역시 전문인 선교의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
1972년 외교통상부에 발을 들인 주 장로는 83년부터 2006년 은퇴할 때까지 제네바, 포르투갈, 모로코,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참사관이나 대사로 활동했다. 대사로서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일만 한 게 아니다. 현지 한국인 선교사들의 필요를 채우고, 한국인 입양아들을 돌보고,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서도 충실했던 것이다.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대화하고 대접하는 것 자체로 힘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교사들의 요청에 따라 할 수 있는 대로 성경을 조달하고 통역한 것밖에 없습니다. 선교에 특별한 방법은 없습니다.”
주 장로는 97년 주제네바 차석대사로 부임할 때 사랑의교회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고 옥한흠 목사로부터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부부는 이미 ‘세계 어디에 나가서도 예수님의 제자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옥 목사는 이들에게 “어딜 가든지 현지 한인교회에 충실하라”고 당부했다. 교인이라곤 한 가족밖에 없는 곳에서도, 교회 분쟁이 있는 곳에서도 두 사람은 변함없이 이 원칙을 따랐다. 주 장로는 “분쟁이 있는 교회가 많았지만 저절로 평화로워지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며 “하나님께서 작은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하도록 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모두 제자훈련의 결과라는 말도 덧붙였다.
부인의 역할도 대사 못지않다. 한국을 대표해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귀빈을 대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두 사람의 삶과 사역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프랑스의 블랭 상원의원은 이들 부부에게 자신의 지역구에 문 닫는 교회가 많다며 한국의 사역자를 보내달라고 했을 정도다. 김 권사는 “한국의 문화를 가지고 그 나라 깊숙이 파고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여성이 더 적합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김 권사는 몇 년 전부터 프랑스에서 미술전시회를 열어 수익금으로 아프리카 선교단체를 돕고 있다.
주 장로 부부는 외교를 할 때나 선교할 때나 기도를 항상 최우선에 둔다. 국가 정상들을 설득하는 일이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주 장로가 VIP를 접견할 때면 김 권사 역시 일정을 잡지 않고 기도에 매진한다. 그런 부부에게 23년간의 외교관 생활은 기도 응답의 연속이었다.
1994년 인도네시아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다. 아시아-태평양지역 무역자유화가 핵심의제였다. 당시 APEC 담당 심의관이었던 주 장로는 해당 국가 실무자들을 만나 협상하는 일을 맡았다. 초안은 한국의 쌀 시장을 2015년까지 완전 개방한다는 것이었다. 협상과정은 난항을 겪었고 초안대로 가는 분위기였다. 주 장로는 아내와 교회에 긴급 기도를 부탁했다. 그런데 막판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10명이 넘는 정상을 일대 일로 만나 협상에 나섰다. 개별 외교에 잘 나서지 않는 김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상 낯선 장면이었다는 게 주 장로의 설명. 결국 ‘한국의 쌀 시장 개방’이란 문구 자체가 삭제됐다. 주 장로는 “당시 완전자유화를 주장하던 인도네시아의 입김이 센 상황에서 그 같은 결정은 기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회고했다.
기적은 1996년 OECD 가입 때도 이어졌다. 당시 한국은 자본시장, 환경, 노동 부문이 OECD 기준에 미달했다. 국제경제국장으로 교섭을 담당하던 그는 이 문제 역시 기도를 부탁했고, “앞으로 국제수준에 맞게 개선하겠다”는 말로 25개 회원국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주 장로는 지금도 OECD 가입 뒤엔 기도의 힘이 있었다고 믿는다.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주 장로는 최근 중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기존 아프리카 선교 외에도 동북아지역과 북한을 위해 자신의 역할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선교의 요청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참여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 보니 무리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김 권사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그것이 결국 효과적인 선교를 가능하게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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