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전석운] 구호만 요란한 ‘동반성장’
정부는 새해에도 동반성장을 산업정책의 주 이슈로 끌고 갈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는 24일 재계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간담회를 갖는다. 26일에는 중소기업 대표들을 초대한다. 앞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동반성장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복지이자 사회 양극화 해법’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지난해 12월 동반성장위원장 직을 맡은 그는 간담회에 이어 삼성전자 협력업체들을 만나는 등 마치 이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청와대 회동 전에 사전 정지작업이라도 펼치는 모습이었다.
이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의 만남은 지난해 9월 13일 이후 4개월여 만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안되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해 참석자들을 긴장시켰다. 대통령이 나서서 공정사회를 부르짖던 당시 분위기에 비추어 보면 ‘중소기업을 안되도록 하는’ 대기업의 횡포나 불공정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이 곧바로 실력행사에 나설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대기업 때문에…’라는 발언보다 ‘사정은 없다’고 한 이 대통령의 발언에 무게중심이 실리면서 대기업들은 안도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 진의가 ‘규제나 처벌’보다 ‘자발적 참여’에 쏠려 있음을 간파한 대기업들은 이후 경쟁적으로 ‘상생방안’을 쏟아냈다. 대기업 총수들이 앞다퉈 중소협력업체를 방문하면서 애로사항을 경청하는 모습을 연출했고, 협력업체들에 대한 현금결제를 늘리겠다고도 약속했다. 고용인원을 조금씩 늘려 발표하면서 청년실업 문제로 고민하는 청와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이 가장 원하는 납품단가 인상이나 현실화, 후려치기 방지 등은 한 건도 없었다.
대기업들은 다른 건 양보하더라도 납품단가에 대해서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 살아남으려면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는 것이 불가피한데 중소기업의 이익을 보장해 주기 위해 납품단가를 인상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폈다. 베트남이나 중국 기업들이 더 싼 제품을 내놓고 있는데 국내 중소기업들의 제품만 고집할 수 없다고도 했다.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에 기댄 상생협력은 한계가 있었다.
지난 연말 ‘통큰 치킨 논란’은 정부의 상생 드라이브의 문제점을 또 한번 드러냈다. 롯데라는 대기업이 통닭튀김을 만들어 팔면 동네 치킨가게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게 청와대의 시각이었다. 하지만 통닭튀김이 대기업이 해서는 안 되는 중소기업 고유 사업영역이라는 법규정은 없다.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는 폐지된 지 오래다.
정부 대응의 문제는 이미 규제 완화 차원에서 폐지한 규정을 들이대거나 뒤늦게 구두선만 날린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30대 그룹 계열사가 최근 5년 사이에 1.5배 늘어났는데 인수합병이나 새로운 업종 진출 같이 불가피한 계열사 신설도 있지만 오너 가족을 위해 사업부문을 분사해서 지분과 사업을 몰아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데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문어발 확장을 막기 위한 장치였던 출자총액제한제를 정부가 폐지한 것이 한 원인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분야에 진출해도 아무 문제가 없도록 규제를 철폐해 놓고 뒤늦게 대기업의 확장을 문제 삼는 건 어불성설이다.
동반성장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정부가 좀 더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명분은 좋지만 실질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자칫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양다리 걸치기에 불과할 수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들이 민감해할 동반성장지수를 만든다면서 대기업들의 모임인 전경련 기금에서 100억원을 위원회 예산으로 가져다 쓰겠다고 한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정 위원장이 뒤늦게 “정부와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 (위원회 예산을) 지원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지만 뒷맛이 씁쓸한 건 여전하다. 아무래도 동반성장은 성가신 구호로 그치고 말 것 같다.
전석운 산업부 차장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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