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청렴으로 신앙인의 본… ‘영락교회 1호 장로’ 송성찬 원로장로 7일 장례 예배
기독교의 사회적 이미지가 갈수록 나빠지는 가운데 ‘말없이, 세력도 재산도 없이’ 살다 간 한 장로의 삶이 눈길을 끈다. 7일 오전 10시 서울 저동 영락교회 본당에서 장례예배가 드려진, 영락교회 1호 장로였던 고 송성찬 장로가 주인공이다.
이날 예배에서 이철신 담임목사는 “송 장로님은 특별히 선비의 삶, 신앙적으로 겸손한 삶을 사신 분으로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실 분”이라면서 “우리도 그분의 삶을 따라가자”고 설교했다.
송 장로의 대광고 제자였던 이 교회 김철우 원로장로는 눈물로 목이 멘 채 “소리 없이 빛도 없이 평생을 봉사, 헌신하신 장로님, 부디 하늘나라에서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편시 쉬소서”라고 조사를 읽었다. 예배 직후 송 장로의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영락동산에 안장됐다.
송 장로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독립운동가 송병조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국 상하이에서 부친의 독립운동을 돕던 1943년, 32세의 나이에 상해한인교회에서 장로직을 받았으며 48년 영락교회 1호 장로로 장립됐다. 지난해까지 68년간 장로로서 산 것이다.
영락교회에서 교회학교 체계를 세우면서 기독교 교육에 몸담은 송 장로는 47년부터 20년간 대광중고교 교감으로, 이후 14년간 영락중학교와 상업고 교장으로 재직했다. 82년 교장과 장로직에서 동시에 은퇴해 원로장로에 추대됐고, 84년에는 사단법인 영락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이밖에 64년에는 환갑이 넘은 나이로 서울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한국광복회 부회장(1977)과 대한독립유공자회장(1981)도 역임했다.
송 장로는 청렴하고 재산을 모으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90년 미국으로 건너간 것도 평생 집 한 채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교직 은퇴 후 사택에서 나온 뒤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어 미국 LA에 사는 동생에게 의탁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캐나다와 미국 뉴욕에서 별세 전까지 딸과 함께 살았다.
별다른 지병이 없던 송 장로는 지난해 8월 19일 대광고 동문 등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뉴욕 충신교회에서 열린 ‘100세 축하연’에서 정정하게 설교를 했다. 그러나 급격히 노환이 진행돼 12월 16일 새벽(현지시간)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찬송 작가로서 30여 수의 찬송시를 남기기도 했으며 첫 자서전 ‘흔적’에 이어 최근까지 두 번째 자서전을 집필 중이었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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