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주리] 삶과 춤

나는 타고난 몸치다. 어릴 적부터 체육 점수는 늘 꼴찌였고, 공을 던지면 공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뒤로 떨어질 정도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입시 종목이던 수류탄 던지기를 할 때마다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이게 정말 수류탄이라면 내가 던진 수류탄이 뒤로 떨어져 내 귀한 동지들이 다 죽을 수 있으리라는 상상 때문이었다. 체육 점수가 전국에서 제일 하위에 속했기 때문에 나는 늘 생각보다 낮은 학교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학교란 우리들 인생에 그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수류탄 던지기’나 ‘800m 달리기’ 같은 억압적인 종목이 아니라 우리 춤을 한마당 추어보라는 그런 시험 종목은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든 건 며칠 전 남산 한옥 마을에 있는 국악원에서 ‘임이조와 함께 하는 우리 춤 읽기’라는 공연을 보면서였다. 원래 우리 춤이나 가락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닌 나는 친구를 따라 거의 억지로 공연을 보러 갔다.

남산 국악원이 어딘지 몰라 헤매다가 거의 시작하기 1분전에 도착해 허겁지겁 자리에 앉은 나는 조금씩 우리 춤에 빠져 들어갔다. 내가 왜 이런 세계를 등한시 했던가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외국의 유명 연주가들의 음악이나 춤 공연에 비하면 관람료는 무지하게 싼 편이었다. 물론 우리 춤을 아주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 감흥을 제대로 느끼기 시작하는 걸 보면 내가 나이가 든 탓인지도 몰랐다. 고등학교 시절 체육은 물론 무용 시간도 내게는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고전 무용을 할라치면 나는 그 움직임 없는 몸동작에 잠이 쏟아져서 서서 졸기 일쑤였다.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마지막 무용시간에 맘대로 자유롭게 춤을 추어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제멋대로 춤을 추고 나니 무용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였다. “자네는 창작 춤에 소질이 있는 것 같은데, 무용을 해보면 어떨까?” 이사도라 던컨이 살아 돌아올 만큼 내게는 충격적인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내가 춘 막춤은 백점을 받았고, 나는 그 사실이 신기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그 무용 선생님은 아무도 몰라본 내 안의 한과 흥을 알아본 남다른 눈을 지닌 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모든 예술은 한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고, 예술가인 우리가 어떤 장르와 만나는가 하는 것은 어떤 사람과 만나는가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연의 문제인 것이다. 임이조 선생의 ‘허튼 살풀이’를 보면서 나는 나 자신의 몸 안에 고인 한과 흥이 느껴져 어깨춤이 추어졌다. 사회를 본 진옥섭 선생의 말들도 가슴에 와 닿았다.

“춤이란 우리의 몸 안에 고여 있던 시간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혹은 “무대라는 저울 위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 그런 표현도 그냥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그리 춥지 않은 겨울 날 분위기 있는 남산 한옥마을에서 보낸 두 시간은 내게는 참 소중한 선물이었다. 우리네 삶도 저렇게 한과 흥이 서로 스며든 한마당 춤이 아니겠는가?

황주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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