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신삼국지-젊음의 거리를 가다] 中, 서구문화에 만취·日, 불황에 움츠린 젊음
한·중·일 3국의 ‘젊음의 거리’에는 시대의 표정이 깊게 배어 있었다. 젊은이들은 시대의 변화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응하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내고 있었다.
◇다양한 놀이 공간, 한국 홍대 거리
지난 4일 오후 10시 서울 상수동 홍익대 앞 클럽 NB(노이즈 베이스먼트) 입구에 손님 40여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곳은 힙합, 하우스, 일렉트로니카 등의 음악이 흐르는 20대만의 공간이다. 클럽 관계자는 “3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지만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어 밤새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했다. 홍대 정문 인근에는 이 같은 클럽이 10여개가 성행하고 있다. 홍대 거리는 인디 음악의 중심지다. 최근 몇 년 새 젊은이에게 큰 인기를 얻은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 갤럭시 익스프레스도 모두 이곳 출신이다.
대중의 취향과 문화 트렌드가 다양해지면서 클럽의 모습은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서울 상수동 극동방송 맞은 편 건물 2층에 위치한 재즈클럽 ‘에반스’도 오후 8시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부터 홍대 정문을 지나 상수역까지 이어지는 거리에는 록, 블루스, 재즈, 팝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클럽이 즐비하다.
젊은이들은 보고 즐기는 데서 만족하지 않았다. 직접 무대에 서기를 원했다. 홍대입구역 사거리에서 만난 직장인 밴드 ‘어쿠스틱 드래곤’도 그랬다. 이들은 크리스마스에 홍대 앞 한 클럽에서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일을 마치고 급하게 나온 듯 드러머는 정장 차림이다. 홍대입구역 주변에는 이들처럼 직장인 밴드를 위한 합주실 10여곳이 성행하고 있다. 라이브 클럽도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이들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고 있다. 소비자 중심 문화로의 전환이다.
공연장에서 연주할 준비가 안 된 ‘덜 익은 예술가’들은 홍대 놀이터에서 주말을 보낸다. 길거리와 놀이터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춤을 연습하고 어울려 악기를 연주하며 밤새 노래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거리를 강타한 서구식 유흥문화
건물 전체가 야광 도료를 바른 듯 반짝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쿵쾅 쿵쾅’ 베이스 소리가 들렸다. 건물 앞 아스팔트 공터에는 BMW, 아우디, 벤츠 등 고급차 수십대가 빽빽하게 늘어섰다. 입구에는 짙은 화장의 20대 초반 여성이 만취한 채 다른 여성에게 부축돼 걸어 나오고 있었다.
지난달 26일 오후 11시(현지시간)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공티베이먼(工王줅?에 위치한 중국 최대 나이트클럽 ‘MIX’의 모습이다.
킬힐 구두, 미니스커트, 탱크톱. 여성들의 옷차림은 패션 잡지 최신 유행 그대로였다. 남성 역시 스키니진과 브이넥 티셔츠 등 연예인을 따라했다. 남녀 모두 펌, 염색으로 모양을 냈다.
평일 MIX를 찾는 사람은 800∼1000명. 주말에는 1200∼1500명이 찾아온다. 입장료는 1인당 100위안, 우리 돈으로 1만7000원이나 되지만 중국의 젊은이들은 언제나 이곳을 핫 플레이스로 꼽는다.
베이징의 대표적인 번화가는 본래 관광객 중심으로 발달했다. 백화점과 식당이 모인 왕푸징 거리에는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러톈인타이(樂天銀泰)백화점, 왕푸징둥팡신톈디(王府井東方新天地) 등의 대형 백화점이 자리잡고 있다.
왕푸징 거리에 이어지는 작은 골목인 왕푸징샤오츠 거리와 둥안먼메이스팡 거리는 기념품과 먹거리를 파는 곳이다. 이곳에는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모자 가게, 가죽제품점, 찻집 등이 모여 있다. 모두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던 곳이지만 최근 중국 젊은이의 방문이 늘면서 유명 브랜드 상점도 속속 입점하고 있다.
◇불황이 만든 새로운 소비 패턴, 일본
지난 3일 오후 3시쯤 방문한 일본 도쿄 서남부 하라주쿠 거리. 이곳은 명품 백화점과 갖가지 잡화를 파는 상점이 밀집한 대표적인 쇼핑 지역이다.
하라주쿠 역 정면에 있는 다케시타토오리 골목으로 들어가자 액세서리와 의류 전문 매장이 늘어서 있었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 곳곳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선물을 사로 나온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빨간색 푯말로 내걸린 세일 문구였다. 세일은 30%에서 최대 70%까지 이어졌다. 물건 가격도 매우 낮아져 3000엔이 넘는 의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골목에서 4년째 모자와 티셔츠 등 잡화점을 운영했다는 구라조노 다츠야(27)씨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의 숫자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갑을 여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쿠라조노씨가 운영하는 잡화점의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절반 이하로 내려앉았다.
쇼핑 패턴도 바뀌었다. 커피숍 도토루에서 만난 회사원 요시 나나에(23·여)씨는 “불경기 때문에 옷값은 많이 내렸지만 거리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상점에서는 좋은 아이템을 구경한 뒤 인터넷을 뒤져 비슷한 물품을 싸게 사는 일이 습관이 됐다고 했다.
하라주쿠에서 남쪽으로 1㎞떨어진 곳에 있는 시부야 역시 장기 불황의 흔적이 가득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중심가 거리에서 돼지고기 덮밥이 270∼560엔인 식당으로 몰려갔다. 2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식당이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들어왔다. 맞은편에서 1400엔짜리 정식을 파는 식당은 관광객으로 보이는 손님 2명만 앉아 있었다.
코트라 일본사업팀 임지훈(28)씨는 “젊은이들이 싼 식당만 찾아 30분씩 줄을 서서 먹는다”며 “불황이 상점가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하라주쿠역 북쪽으로 지하철로 세 정거장 거리에 있는 신오쿠보는 활기가 넘쳤다. 이곳은 도쿄 한류의 중심지다. 신오쿠보는 본래 일본 주재 대사관이나 유학생을 상대로 한국 음식을 팔던 곳이다. 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드라마 ‘가을연가’가 인기를 끌면서 40, 50대 주부들이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연령층이 10, 20대로 낮아졌다. 소녀시대, 빅뱅, 동방신기, 카라 등 ‘K-POP’ 그룹이 인기를 얻기 시작해서다.
역 주변 거리에는 한류백화점이나 아이돌파크 같은 한류스타 상품점과 삼겹살, 김밥, 감자탕 등 한국식당 200여개가 성업 중이다. 삼겹살 1인분에 1만엔, 동방신기 브로마이드 한 장이 500엔이다.
신오쿠보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조윤섭(42)씨는 “신오쿠보는 도쿄에서 유일하게 상점 매출이 늘고 있는 곳”이라며 “매일 2∼3건씩 입점 문의가 올 정도”라고 말했다. 상점의 권리금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올라 45㎡(13.6평) 크기 상점 권리금이 3000만엔(4억5000만원)을 호가한다.
베이징=강창욱 기자, 도쿄=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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