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경자] ‘정복’이라는 표현에 대한 시비

Է:2010-11-0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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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경자] ‘정복’이라는 표현에 대한 시비

“폭력적인 세상에선 상대를 정복해야 안심된다. 정복이란 말은 반생명적이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리산에 갔다. 세석평전에서 벽소령 가는 길이었다. 영신봉에 서서 지리산을 바라보았다. 단풍이 물든 지리산 연봉은 아득했다. 돌만 밟고 올라오느라 발목이 시큰거리는데 바라보이는 능선은 한없이 부드럽고 너그러워 그 품에 안기고 싶었다. 왜 지리산을 어머니 산이라고 하는지, 세속을 떠난 사람들이 지리산 자락 어딘가에 은신할 수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일행 중 한 남자어른이 내 곁에 서서 두 팔을 펴 올리며 흡족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 세석평전을 정복했다! 순간 내 맘이 ‘정복’이라는 낱말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왜 산을 오르고 정복이란 느낌을 가지게 될까. 분명 나쁜 마음은 아닐 테니 그분은 습관적으로 그렇게 썼을 것이다. 그러나 습관은 무섭다.

나는 산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많은 경험을 한다. 사람 아닌 생물의 존재감과 그것들의 자연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첫째다. 산이 그리워지는 이유를 일부러 생각해 보면 바로 그런 생명으로부터 얻는 ‘위로와 위무’였다. 원래 있던 그대로, 생긴 그대로의 생명들로부터 세속의 욕망, 오욕칠정의 덧없음을 깨달을 때 아마 커다란 위로가 주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사람마다 산을 오르는 이유와 느낌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산을 정복한다는 성취감은 아무래도 좋지 않다. 하기야 산에 오르는 것을 ‘정복’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어디 그분만이랴. 사람들이 오르기 어렵다는 히말라야의 어떤 봉우리며 어디의 어떤 봉우리를 등산가 아무개가 어떻게 정복했다는 것, 그것도 세계에서 최초라거나 아니면 몇 번째라고 칭송하는 언론매체들의 보도와 만나니까.

무엇이든 정복한다고 표현하길 거리끼지 않는 이 시대에 그완 정반대의 개념이 유행 중이다. ‘자연 친화’ ‘초록’ ‘녹색’ ‘평화’ ‘공정’ 등의 말이 그것이다. 그 말들의 내면엔 하나같이 정복의 느낌을 싫어한다는 소원이 들어있다. 정복한다는 것은 존재를 내 것으로 만들고 존재의 개성을 무시하고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는 의지일 테니, 두말할 필요 없이 폭력이다. 이즈음 자연 친화, 초록, 녹색, 평화, 공정 따위의 이름이 붙은 것을 먹고 입고 쓰며 살고자 하는 것은 폭력으로 얻어진 것이나 사람의 탐욕에 의해 정복되지 않은 것이 궁극적으로 인간 생명에 좋고, 인간에게 좋은 것이 자연에게도 좋다는 은연중의 선택이다.

그런데 이런 선택들은 자연을 돌아보는 것, 내가 아닌 존재에 대한 관심과 존중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멍청하게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듯 보이는 사람은 대개 나 같은 노인네뿐이다. 어리거나 젊은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한다. 자신이 가진 전자기기에 눈과 귀를 모아 몰두하는 것이다. 그런 줄 모르고 길을 묻거나 말을 걸으면 일단 짜증스런 표정이 되며 귀에서 이어폰 줄을 잡아당긴다.

그들은 옆에 누가 앉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전자기기 속의 내용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전자기기 속에는 영화나 드라마, 경기, 게임, 공연, 이야기 따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대충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상품’이기 십상이다.

우리네 도시화한 삶에는 이웃이 없다고 한다. 이웃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웃을 모르는 생활습관은 다른 사람에 대한 무지가 멋처럼 여겨지는 풍속을 낳는다. 사람을 모르면 무조건 경계하고, 경계하면 적대감이 쉽게 생긴다. 경계심에 대한 예로는 짐승과 사람 관계를 비유하는 게 적절하다. 아무리 무서운 짐승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는단다. 예전엔 호랑이가 길을 안내하고 팔베개를 하고 잠잤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사람이 사람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을 불편하거나 어색하게 하는 세상은 분명 폭력적인 세상이다. 그래서 상대를 정복해야 안심이 된다. 정복이란 말이 얼마나 무섭고 반생명적인지 모골이 송연해져서 이런 글을 쓴 나는 이 시대와 불화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이든 정복해야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천국이라면, 아니다, 절대적으로 지옥이다.

이경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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