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결혼 ‘무국적자’ 리정애씨의 간절한 호소 “왜 저는 이 땅에서 살 수 없나요”

“전 왜 우리땅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요? 같은 민족인데도 왜 전 우리땅에서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건가요?”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세종로 경복궁에서 만난 재일동포 3세 리정애(35)씨와 동갑내기 남편 김익씨 부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이달 10일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신혼의 설렘을 느낄 여유가 없어 보였다. 리씨가 국적 문제로 한 달 후면 일본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리씨는 광복 이전의 조선 국적인 조선적(籍)을 갖고 있다. 조선이란 나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국적자인 셈이다.

조선적은 한동안 입국이 제한되다 1990년 남북교류협력법이 제정된 뒤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으면 한국을 오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최근 영사관에서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리씨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일제시대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강제 이주됐다. 일본에서 태어난 리씨는 2004년 한국 땅을 처음 밟은 뒤 한국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될 정도로 한국에 흠뻑 빠졌다. 그녀는 “우리말이 들리는 우리땅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한민족인 북한을 바라보는 마음도 남다르다. 그래서 2008년 1월 통일운동가인 김씨를 만나 결혼까지 했지만 선뜻 한국 국적을 택하지 못했다.

“국적은 제 양심의 문제예요. 한국 남성을 사랑해서 결혼은 했지만 우리 민족이 둘로 갈라져 있는 마당에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어요.”

한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어 리씨는 결혼 전 상견례도 여러 차례 미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 한국 영사관에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입국, 결혼식은 올렸지만 약속한 기한인 다음달 12일까지는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리씨는 “일본에 있는 한국 영사관에서 3개월 안에 일본으로 돌아온다는 각서를 받고서야 임시여권(여행증명서)을 내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가면 한국 영사관이 여행증명서를 내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다시 한국으로 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녀는 “일본인도 무비자로 한국에 드나들고, 한번에 1년 동안 머무를 수 있는데 같은 민족인 제가 왜 우리땅에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리씨의 이야기는 최근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보리)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재일동포로서 리씨가 일본과 한국, 북한을 오가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이야기와 재일동포들의 아픔과 고민 등이 담겨 있는 책이다. 이들 부부는 다음달 생이별을 앞둔 무거운 마음이었지만 우리나라의 정기를 만끽해 보자는 뜻에서 14일 통영과 월출산 등으로 전국일주 신혼여행을 떠났다.

글·사진=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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