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신학대 대학원생 을지 자르갈씨 “한국서 받은 사랑 몽골 다음세대에 전해야죠”
“우리 을지 사진 예쁘게 찍어주세요. 오늘 너무 예쁘다.”
을지 자르갈(31·여·장신대 구약학 석사과정)씨는 행복해 보였다. 12일 서울 광장동 장로회신학대학 교정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친구들은 을지씨를 보며 엄지를 올렸다. 그는 수줍어하면서도 웃음을 띤 채 카메라 렌즈에 눈을 맞췄다.
나의 가족 한국
그에게 한국은 ‘가족’이다. 한국인 친구들은 형제요, 또 자매다. 지난 5월 을지씨는 갖고 싶던 아이폰을 손에 넣었다. 친구가 “휴대전화 너무 오래 썼지?”라며 불쑥 아이폰을 선물로 준 것. 친구는 을지씨의 휴대전화 요금을 묵묵히 내면서 군말 한 번 하지 않았다. 그에겐 가족과도 같은 한국인 친구가 한둘이 아니다.
을지씨는 1998년 몽골 울란바토르대 한국학과 입학과 동시에 몽골인 교수의 권유로 한인교회인 아멘교회에 나갔다. 좋은 사람도 많고 한국어도 배울 수 있다는 이유였다. 처음에 그는 교회에 나간다는 이유로 눈칫밥을 많이 먹었다. 몽골의 기독교인 수는 전체 인구의 1∼2%로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교회에 간 첫날 모든 사람이 따뜻하게 축복해줬던 것을 잊을 수 없어요.” 고향을 떠나 살던 그에게 한인교회는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한국어가 늘지 않아 고민을 거듭하던 2000년엔 이 교회 안광표 목사의 부탁으로 새벽예배의 통역을 맡았다. 매일 한글성경 1장과 몽골어 성경 1장을 읽고 쓰며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어 실력이 크게 향상돼 고민이 해결됐다. 신앙도 자연스럽게 깊어졌다.
국제관계학을 전공해 국제적으로 활동할 꿈을 갖고 있던 그가 신학을 선택한 것은 이때의 경험 때문이다. 통역을 한 6년 동안 매일 아침 기도하며 ‘먼저 믿은 사람으로서 몽골인을 변화시키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
안 목사 역시 용기를 북돋웠다. 안 목사는 몽골 사역의 수족과 다름없었던 을지씨를 한국으로 보내 신학을 할 수 있게 도왔다. “제 도움이 꼭 필요한 분인데 더 큰 일을 해야 한다며 한국으로 보내주셨어요”라고 기억했다. 순간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이내 진심어린 감사의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렀다.
“받은 것 이상 돌려줄래요”
을지씨는 외투를 벗어 오른팔을 보여줬다. 심한 화상 자국이 팔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는 “한 살 때 끓는 물에 팔을 넣었다 화상을 입었어요”라며 상처 부위를 어루만졌다. 7년 전 허벅지 피부를 이식해 좀 나아진 거라고 했다.
피부 이식 역시 한국인 덕분이었다. 2003년 그는 서울 안국동 안동교회의 도움으로 세 차례에 걸친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안동교회와 수술을 집도했던 백병원 백낙환 박사의 지원 덕에 그는 금전적 어려움 없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도중 “한국 사람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참 행복합니다”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받은 것 이상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게 어느새 그의 꿈이 됐다. 그는 올해 초부터 안동교회 영아부 전도사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는 “주일 모든 예배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올 때 가장 마음이 허전해요. 명절 이후의 적적함과 같은 감정이죠”라며 아쉬워했다.
다음 달부터는 몽골 선교를 꿈꾸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몽골어를 가르칠 예정이다. 을지씨는 “제가 받은 모든 것을 꼭 한국, 또 몽골의 다음세대에 전해주고 싶어요. 어려움이 많겠지만 기쁘게 제 소임을 다할 겁니다”라며 밝게 웃었다.
글 조국현 기자·사진 강민석 선임기자 jo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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