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황장엽과 리영희

Է:2010-10-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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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모두 한국의 현대사적 인물이다. 선생이니 교수니 하는 존칭을 생략하는 이유다. 둘의 만남은 1998년 5월 11일 단 한번 이뤄졌다. 황장엽 망명으로부터 약 1년 후다. 북한과 통일을 주제로 한 대담이었다. 황장엽의 모두 발언이 길어지자 리영희는 “기자회견이 아니라 대화”라고 제동을 걸었다. 황장엽은 “대화고 뭐고 내가 이야기하는데 왜 자꾸 끼어드느냐”며 책상을 쳤다. 두 사람의 대화는 점심식사를 포함한 7시간 내내 평행선을 그렸다.

그 후 리영희는 이 만남을 회고할 때 황장엽에 대해 “자아 상실”이라고 말했다(‘대화’·2005). 이념을 상실하거나 바꿨을 때 자기의 중심을 잃게 되는 현상이라고 했다. “비극 배우”같다고도 했다. 권력 중심으로부터 멀어진 사람의 소외감과 상실감을 지적한 표현이다. 반면 황장엽이 후일 리영희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황장엽은 북한 주체철학의 창시자, 리영희는 남한 운동권에게 ‘사상의 은사’로 불린다. 황장엽의 주체철학은 김일성을 우상으로 만들었다. 황장엽은 그 우상의 나라 북한을 탈출했다. 리영희는 냉전시대 남한의 우상파괴자였지만 좌파 지식인들은 그를 우상으로 만들었다. 리영희는 2007년 5월 17일 개성행 경의선 열차에서 “20∼30년 길러 낸 후배와 제자들이 남측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황장엽도 북한 사람이고 리영희도 북한 출신이다. 해방 후부터 6·25 전쟁기까지 많은 북한 지역 주민이 38선을 넘어 이남으로 내려왔다. 북한 공산주의 체제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전쟁 전에 학업이나 경제 사정으로 내려왔다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전자는 남쪽을 택했다는 적극적 의미에서 월남민, 후자는 실향민이라는 말이 적절하겠다. 고향을 등진 사람과 고향을 잃은 사람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두 부류의 의식에는 차이가 있다. 황장엽은 한참 뒤늦은 월남민(탈북자라고도 한다)이다. 리영희는 그의 자전(自傳)에 따르면 실향민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알면 통일에 대한 그의 열정이 이해된다.

황장엽은 자신의 ‘조국’을 버린 사람이다. 리영희는 남한만으로는 온전한 조국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인격과 사상을 포함해 한 인물의 가치는 관 뚜껑을 덮은 후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북한체제의 관 뚜껑이 닫힐 때 두 인물의 시비(是非)가 가려지지 않을까.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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