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단 ‘미라클’ 샘물호스피스병원 환자들에 음악 선물
50대로 보이는 한 여인이 휠체어에 탄 채 로비로 나왔다. 병색이 비치긴 해도 맑은 얼굴. 로비는 곧 아름다운 선율로 꽉 찬다. 12대의 바이올린에 첼로와 플루트, 클라리넷, 피아노까지 어우러진 합주는 1∼2m 거리 좌석에서 들으면 소리의 크기와 악기의 울림에 압도될 정도다. 비록 기교나 화음이 대단한 연주는 아니어도 청중의 머리와 가슴속을 음악으로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등 하나님 앞에서의 내려놓음, 천국에 대한 소망을 담은 찬송 위주로 연주가 시작됐다. 주된 청중이 바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 호스피스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에 위치한 샘물호스피스병원이다.
연주단 ‘미라클’은 바이올리니스트 이미라(45)씨와 바이올린 첼로 등을 연주하는 초·중학생 20여명, 그리고 중창과 피아노, 플루트, 클라리넷 등으로 참여하는 그 학부모들로 구성돼 있다. 8일 오후 연주가 25회째. 2008년 4월부터 매달, 명절이 겹친 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중단 없이 이어진 결과다.
빡빡한 학업 속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다’는 수식어를 달고 사는 학생, 그중에서도 고입 준비에 한창인 중3이 대부분인 이들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시험기간 중에도, 휴가철에도 결원이 많지 않다. 이날도 이씨의 아들 김현교(15·수지 문정중3)군은 전날까지 과학고 시험을 치르고 녹초가 된 몸으로 왔다. 김재현(13)군은 미국으로 유학 갔음에도 방학을 이용해 귀국, 참여했다.
음악을 전공할 아이들도 아니다. 처음 배울 때는 더러 그런 꿈도 가졌으나 지금은 거의가 취미다. 한국 교육 현실에서는 그쯤 되면 레슨과 연습에 할애하는 시간이 급격히 줄지만 이들은 매주 꾸준히 레슨을 받는다. ‘미라클’ 공연을 위해서다.
연주 중간에 학부모들의 중창이 있었다. 부모들은 한동안 아이들을 데려오는 역할만 했지만 병원 측의 “뭐라도 하시라”는 제안을 계기로 참여하고 있다. ‘미라클’ 결성의 주역은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들이다. 이씨가 교회 봉사를 통해 샘물호스피스에서 연주한 일을 아들의 학교 친구 엄마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하자 ‘학교 제출용 봉사 말고, 진짜 봉사를 찾아보자’는 공감대가 금세 형성됐던 것이다. 요즘 ‘커피맘’이라고 불리는 이런 엄마들이 흔히 그러 듯 ‘어떻게 자녀를 유별나게 잘 가르칠까’에만 신경 썼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신희승(15·문정중3) 희주(13·문정중1) 자매의 어머니 김지연(41)씨는 “부모도 아이들도 다 신앙을 가지고 있다 보니 은연중에 의미 있는 봉사를 늘 찾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바이올린 사중주와 독주 등이 이어지던 중 신청곡이 들어왔다. 휠체어 여인의 신청이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곡이 연주되는 동안 눈을 감은 여인은 양손을 앞으로 펼치고 뭔가 조그맣게 읊조렸다.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한 시간 남짓의 연주가 다 끝나자 환자와 보호자들은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각자 방으로 향했다. 휠체어 여인의 표정에도 생기가 더해졌고 그 휠체어를 미는,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은 “그레이트! 잘했어요. 다음달에도 꼭 보러 올게요”라며 웃었다. 다른 이들도 비록 병실 밖으로 나올 만큼 기력은 없었지만 각 방의 TV를 통해 음악과 연주 모습을 즐겼을 것이다.
악기를 챙기는 아이들은 마냥 천진한 모습인데 이야기를 나눠 보면 속이 깊다. 오승연(15·수지 손곡중3)양은 “오늘 연주 들으신 분이 다음달에는 안 계실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그분들의 마지막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들이 연주해온 기간에 샘물호스피스를 거친 환자는 1000명이 넘는다.
생각해 보면 대단한 봉사는 아닐지 모른다. 매달 한 번의 연주를 위해 이들이 희생하는 것을 굳이 꼽자면 시험성적 몇 점, 학원에 갈 수도 있었을 시간 반나절과 체력 정도일 것이다. 그 반면 얻은 것은 많다고 이들은 말한다. 평생 한 가지 봉사는 하겠다는 결심, 꾸준히 악기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 마음 맞는 친구, 부모님과의 소통, 그리고 죽음에 대한 성찰….
이세희(15·성복중3)군은 바이올린 스승이기도 한 이씨에게 짐짓 너스레를 떤다. “선생님, 저희 취직할 때까지만 미라클 계속 이끌어 주세요. 그 다음엔요? 제가 새롭게 만들어야죠. 야, 너희들, 그땐 나랑 같이 해야 된다!” 한바탕 맑은 웃음이 병원 안을 울렸다.
용인=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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