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오일환 전 조사위원회 유해팀장 “日은 봉환 준비됐는데 정작 우리 정부는 뒷짐”

경술국치 100년 기획 잊혀진 만행… 일본 戰犯기업을 추적한다

제3부 강제동원 더 깊이 들여다보기

④ 강제동원 미귀환의 상징, 유골

“일본 정부는 유골을 돌려줄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 정부가 호응하지 못하고 있다.”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강제동원 조사위원회)’ 오일환(42) 전 유해팀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광복 후 65년이 흐른 가운데 일본 본토에 남아 있는 조선인 노무자 유골 규모가 한국과 일본 정부의 조사에 의해 밝혀졌다(본보 1월 11일자 1·3면 참조). 하지만 유골 봉환을 앞두고 조사위원회의 유해 발굴·봉환 기능이 대폭 축소됐다. 유골이 한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의미다.

박사급 전문위원으로 유해팀을 이끌며 지난 3년간 일본 전역은 물론 러시아 사할린까지 뛰어다닌 오 전 팀장도 조사위원회를 떠나 학계 복귀를 준비 중이다. 그는 이런 현실에 대해 무한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강제징용자 유골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정부는 어떻게 호응했나.

“2005년 5월 ‘한·일 유골협의’가 열렸다. 일본 내 조선인 유골 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실무협의가 정례화된 이후 일본은 지난해 1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2601위의 소재지를 파악해 한국에 통보했다. 지난 3월 4차 통보가 이뤄져 현재 총수는 2643위다. 일본 전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납골당과 사찰 등을 조사한 것이다. 물론 탄광 등 산야에 매장된 유골에 대해선 일본 측이 조사하지 않았고,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합골 유골이 많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우리가 공세적이었는데, 지금은 일본이 알아서 조사하고 데이터를 보내준다. 이제는 거꾸로 우리 정부가 챙기지 못하고 있다.”

유골 봉환은 크게 군인·군속 방식과 민간 노무자 방식으로 구분된다. 일제의 전쟁터에 직접 끌려가 사망한 군인·군속의 경우에는 명부 등이 존재해 어느 정도 진상규명이 가능하다. 반면 일본 기업에 강제동원됐다 탄광·공장 등지에서 숨진 노무자들은 책임 문제를 피하려는 기업의 은폐와 무성의로 규명이 쉽지 않다. 조사위원회는 2008년 1월부터 지난 5월까지 2년여간 4차례에 걸쳐 도쿄 유텐지(祐天寺)에서 군인·군속 423위의 유골을 본국으로 들여왔다. 그러나 민간 노무자 유골은 규모만 파악했을 뿐 아직 봉환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노무자 유골을 돌려받기 위해 일본과 어떤 협상을 했나?

“처음엔 일본 정부의 태도가 완강했다. ‘조사만 하겠다’에서 ‘유골을 돌려주겠다’까지 협상하는 데 1년여 걸렸다. 또 봉환할 때 추도식과 유족 초청 방법 협상에 1년, 그리고 일본 정부의 누가 와서 사과와 책임을 언급할 것인지 설득하는 데 1년. 이런 식으로 입장 차를 좁혀왔다. 그 결과 노무자도 군인·군속에 준하는 방식으로 봉환하자는 데 실무 의견이 모아졌다. 이제 한국 정부가 확답해야 할 시점인데 그 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왜 움직이지 못하나. 예산 때문인가?

“지난해 12월 31일 정기국회 마지막 날 4대강 사업 등의 여파로 유골 봉환과 관련된 올해 예산이 모두 삭감됐다. 지난달 제4차 유텐지 유골 봉환 행사도 예비비로 한 거다. 내년은 고사하고 올해도 본예산이 없다. 일본 입장을 생각해 보라. 전국의 시설에 사람을 보내 노무자 유골을 도쿄로 모으고, 그걸 보관하고, 한국 유족을 초청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 그럼에도 일본은 그 비용을 전부 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마지막 남은 봉환 작업을 할 돈이 없는 형편이다.”

-지난 3월 두 개의 위원회가 통합돼 업무 계약이 끝났는데도 5월 유골 봉환까지 두 달간 월급도 받지 않고 일했다고 들었다.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따자마자 귀국해 3년간 위원회에서 주말 없이 일했다. 국가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내가 아니더라도 이 업무는 지속돼야 한다. 광복 후 60년 동안 유해 발굴·봉환 업무가 공전했던 이유는 전담 기구나 조직, 전문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업무를 축소한다면 60년 만에 회복한 지난 5년간의 성과를 모두 포기한 채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한·일 우호협력의 발판을 스스로 걷어차고, 희생자 영령과 유족 가슴에 두 번째 비수를 ‘우리가’ 꽂는 셈이다.”

특별기획팀=글·사진 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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