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60주년-문학으로 본 전쟁과 기억] 릴레이 인터뷰 ④ 희곡작가 박조열

Է:2010-06-0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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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60주년-문학으로 본 전쟁과 기억] 릴레이 인터뷰 ④ 희곡작가 박조열

“전쟁의 아픔 점점 커져가 결국 펜을 놓았죠”

희곡작가 박조열(80)는 1986년 이후 희곡 쓰기를 중단했다. 그는 전쟁과 분단을 주제로 꾸준히 희곡을 써오던 작가였다. 첫 작품이었던 ‘관광 도시’부터 대표작인 ‘오장군의 발톱’까지 그의 모든 작품은 분단 현실에 처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박 작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글 쓰는 게 더디어 졌다. 기력이 쇠한 것도 아니고 쓸 이야기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전쟁의 기억을 파고들수록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커져가는 슬픔 때문에 펜을 잡은 손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최근 서울 여의도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 작가는 “별로 들을 얘기가 없을텐데…”라며 말문을 열었다. 절필한 작가가 입으로 무슨 말을 하겠냐는 뉘앙스였다. 오히려 절필이라는 단어에서 분단의 아픔을 뼛속까지 간직한 진정성이 읽혀졌다. 그 진정성은 남과 북을 오가며 목격한 6·25의 참혹에 뿌리를 대고 있다.

1930년 평안남도 함주군 기회리에서 태어난 그는 48년 함흥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문학 교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지주계급이라는 낙인이 찍혀 온갖 불이익을 당하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난 직후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남으로 향했다. 남으로 향하는 배에서 만난 군 장교의 권유로 국군에 입대해 12년 간 군인으로 북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동족끼리 총을 겨누는 부조리극, 게다가 가족을 두고 온 북녁을 적으로 맞서야하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벌써 60년전 이야기인데요. 전쟁 생각은 나지만 아득한 옛날이고, 졸병 때 참전을 해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어요. 고생했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그게 언제인지, 누가 옆에 있었는지 기억에 남는 건 하나도 없어요.”

군 생활을 끝낸 그는 63년 ‘드라마센터연극아카데미 연구과정’에 입학했다. 연극이나 극작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랜 군 생활로 인한 정신적 결락을 충전하려는 막연한 동기였다. 같은 해 첫 작품인 ‘관광 지대’를 쓰면서 그는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관광 지대’는 박 작가가 희곡에 흥미를 느끼게 한 동시에 이후 작품의 방향을 달리 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관광 도시’는 남북관계를 직설적인 방법으로 풀어낸다. 박 작가는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 분위기를 모를 때 쓴 작품이라 남북관계가 그렇게 큰 금기사항이었는지 몰랐다. 알았으면 못 썼을 것”이라면서 “방첩부대에 친구가 있었는데 ‘너 죽으려고 하냐’고 말했다. 그는 ”이후론 조심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가 한국전쟁을 소재로 쓴 작품은 ‘오장군의 발톱’이 유일하다. ‘오장군의 발톱’은 어머니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순박한 청년 오장군이 징집돼 전쟁에 참전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오장군은 군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동쪽나라 장군은 오장군의 순수함을 이용해 적국인 서쪽나라에 거짓정보를 흘리고, 서쪽나라는 오장군을 고도로 훈련된 첩자라고 판단해 그를 사형시킨다.

자신이 겪은 전쟁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정작 ‘오장군의 발톱’에는 그의 개인적 체험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표면적인 이유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면 이데올로기 문제가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관광 지대’에서 한 번 혼났잖아요. 그래서 ‘오장군의 발톱’은 묘해요. 쓰는 동안 옛날에 겪은 전쟁을 생각했지만 전혀 반영은 안 했거든요.”

속내는 이렇다. 그는 ‘오장군의 발톱’을 쓰면서 수없이 울었다. 글은 담담하게 동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웃음이 날 정도로 썼지만 눈시울은 금세 뜨거워졌고, 손은 떨렸다. “전쟁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어요. 뜻을 못 이루고 부상만 당했죠. 지금도 한 순간에 눈물이 납니다. 늘 그래요. 하지만 작품엔 그런 게 전혀 투영되지 않아요. 내 작품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내 감정을 배제했어요.”

그는 ‘오장군의 발톱’이 무대에 오를 때 종종 불편함을 느낀다.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연극으로 만들어진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상황의 부조리함, 전쟁과 평화인데 연출가가 임의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된다”면서 “경험을 녹이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는 아주 유치한 반공극이 되는 게 싫어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오장군의 발톱’은 남북문제를 그린다는 이유로 1975년부터 14년간 공연이 금지되었다. 그만큼 문제작이었다.

그가 글을 멈추게 된 것은 북에 있는 가족의 소식을 듣고 나서다. 모진 고통을 당하신 어머니와 식구들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비참한 마음이 돼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가족사를 듣고 난 뒤로는 그때까지의 구상이 너무 안이하고 관념적이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치열한 작가정신이라는 것도 없고 심약한 거죠. 남들은 이해 못 해요. 내가 제일 그리고 싶은 것은 분단 이야기예요. 분단 때문에 생기는 사람 이야기, 슬픔, 그리움을 담고 싶어요. 그러면 가족사가 생각날 수밖에 없어요. 말할 수 없이 비참합니다.”

박 작가는 “지금도 몇 년에 한 번씩은 써볼까 생각을 하다가 멈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죽기 전에 이걸 써야 한다고 생각 한다”면서 “요즘은 노쇠 현상이 심해져서 써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전쟁은 60년 전에 끝났지만 그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못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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