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의 한반도, 교회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Է:2010-06-0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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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의 한반도, 교회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외교력을 총동원해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전쟁도 불사할 각오가 필요하다. 끝까지 인내하며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천안함 사태로 불거진 남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또 다른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생들 사이엔 전쟁이 임박했다는 유언비어가 돌기도 했다.

현재 모든 사람들이 위기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기독교인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비폭력 평화주의가 필요한가, 아니면 정당한 전쟁도 고려해야 할까.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전쟁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라며 국방력 강화와 평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조언한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는 다윗의 고백(삼상 17:47)을 되새겨야 할 때라는 것이다. ‘通신학자’ 조병호 성경통독원 대표는 “다윗 왕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전쟁 기준이 무엇인지 제시해주었다”며 “성경적 해결책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엡 6:10, 벧전 5:9)이라고 강조했다.

◇성경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성경에는 130여 차례 전쟁이 기록돼 있다. 구약성경 신명기와 사사기를 보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사…손에 붙이셨느니라”는 전쟁 공식이 나온다. 하나님이 악을 행하고 회개하지 않는 민족을 전쟁으로 징계하신다는 논리다(신 18:9∼14). 출애굽기와 여호수아서에서는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하나님을 목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전쟁에 일정 제한을 두고 있었음을 증언한다. 첫째, 20세가 넘는 장정 모두가 전쟁에 동원된 적이 있지만(민 1:2∼3) 대부분 선별된 사람들만이 전쟁에 참여했다(민 31:3∼6). 둘째,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자,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 두려움으로 겁에 질린 자, 레위인 등은 전쟁에 동원되지 않았다(신 20:1∼8). 셋째, 전쟁하기 전 상대방에게 화해를 제의해야 했다(신 21:10∼11). 넷째, 포로로 잡힌 여인을 노예로 삼거나 영원토록 포로로 잡아둘 수 없었다. 그러나 포로와 결혼할 수는 있었다(신 21:10∼14). 다섯째, 전쟁은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제한된 말(馬)의 수 이상을 사용할 수 없었다(신 17:16). 여섯째, 아무리 적의 땅이라 할지라도 나무를 배고 전쟁을 할 수 없었다(신 20:19∼20).

◇교회는 정의로운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성경이 말하는 ‘샬롬(평화)’는 단순한 전쟁이 없는 상태를 아닌 정의로운 평화를 의미한다. 전쟁은 결코 평화를 가져올 수 없고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 아니다. 오히려 또 다른 전쟁을 낳고 적개심을 잉태하는 등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폴 마셜은 ‘정의로운 정치’라는 저서에서 “아무리 의도가 선하다 해도 전쟁은 최후의 방편”이라며 “전쟁 수단도 제한돼야 하고 평화를 도모하는 게 우선”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기독교는 전쟁을 방임하지 말고 평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동신 백석대 선교학 교수는 갈등과 대립 없는 평화는 지난한 과정이 요구된다며 “남북 간 어떠한 충돌도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기독인이 평화를 원하고 있음을 선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지석 새길기독사회문화원장은 “교회는 입으로만 평화를 외치지 말고 평화교육을 선도해야 한다”며 “상반된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북아일랜드가 오랫동안 폭력과 갈등으로 불안해지자 젊은이들이 떠나고 해외유학파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해외기업의 투자가 줄어들어 경제위기도 낳았다”며 “교회는 이 땅에 평화의 영성을 심는 보루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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