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국민의 선택]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국 ‘찍기式 투표’
유권자 한 명이 직책별로 모두 8명을 뽑는 6·2 동시 지방선거가 ‘묻지 마’식 투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 부분 현실로 나타났다. 유권자 대부분이 후보 공약을 비교하기보다 소속 정당이나 정치 성향만 보고 투표했다. 8개 직책이 각각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찍은 유권자는 절반도 안 됐다. 열흘 남짓한 유세 기간에 후보 수십명을 제대로 비교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유권자들은 말했다.
◇‘묻지 마 투표’ 우려 현실로=본보가 2일 수도권 지역 10개 투표소에서 유권자 1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후보들의 공약과 이력을 제대로 알고 투표한 사람은 24명에 그쳤다. 4명 중 1명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44명은 일부 직책이나 특정 후보만 따져보고 투표했다고 답했고, 나머지 32명은 어떤 사람이 후보로 나왔으며 그들이 어떤 공약을 내세웠는지 전혀 모른 채 투표했다고 했다.
8개 직책이 저마다 어떤 권한을 갖는지 정확히 알고 투표한 유권자는 100명 중 41명으로 절반에 못 미쳤다. 32명이 일부만 알고 투표했고, 나머지 27명은 아무것도 모른 채 후보를 뽑았다. 투표율과 상관없이 투표 결과의 대표성부터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유권자는 후보의 정책과 공약보다 소속 정당이나 정치 성향에 따라 투표했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1명은 “기준 없이 아무나 뽑았다”고 했다.
◇꼼꼼히 따져보긴 너무 힘든 투표=투표소가 차려진 서울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강현성(57)씨는 선호하는 정당 소속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소속 정당이나 기호가 없는 교육감과 교육의원은 투표용지에 적힌 순서를 보고 골랐다고 했다. 강씨는 “한번에 봐야 할 후보가 너무 많다”며 “바쁜 사람들이 어느 세월에 그 많은 공보물을 읽겠느냐”고 불평했다. 자영업자 최모(65)씨는 “가뜩이나 투표 안 하고 놀러 가는 사람이 많은데 8명을 찍으라고 하면 번거로워서 더 안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투표소에 와서야 후보들의 공약을 알았다는 유권자도 있었다. 한남동 주민 최용선(25)씨는 “취업 준비 때문에 바빠서 관심을 못 가졌다가 오늘 투표소에 와서 선거용 벽보를 보고 비교했다”고 했다. 최씨는 “모두 찍기는 했지만 솔직히 교육감, 교육의원은 잘 모르고 찍었다”며 “나처럼 자녀가 없고 학교도 졸업한 20대는 사실 교육직에 관심이 없다. 이들 선거는 따로 하면 좋겠다”고 했다.
투표소에서 나오는 유권자 가운데 어떤 후보를 찍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개봉본동 주민센터 주차장에 차려진 투표소에서 만난 14명 가운데 9명이 “방금 투표했는데 사실 누굴 찍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후보가 많아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 어려운 탓이라고 유권자들은 말했다.
강석준(62)씨는 “살면서 지금까지 투표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했는데 오늘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며 “공보물을 한참 들여다보고 왔는데도 시장과 구청장 말곤 한 명도 모르겠다”고 했다. 강씨도 자신이 찍은 8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회사원 박대근(29)씨는 “정당이 없는 교육감은 아무나 찍었다”며 “방금 투표하고 돌아섰는데 누굴 찍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보 제공 부족으로 1인 8표제 취지 못 살려=전문가들은 ‘1인 8표제’에 허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선거비를 줄이려고 한꺼번에 여러 명을 뽑게 한 것이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방해했다는 지적이다.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최영진 교수는 “3개 선거가 동시에 이뤄지고 8명을 한 번에 뽑아야 했던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는 후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예산 절감이라는 경제논리에 따라 치러진 선거 제도지만 유권자들이 심사숙고해 투표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고 말했다.
후보가 많은데 반해 정보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양승함 교수는 “투표 3∼4일 전 도착하는 선관위 홍보물이 유권자에게 제공되는 모든 정보일 정도”라고 꼬집었다. 성균관대 정치학과 김성주 교수는 “정부가 투표를 독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각 정당은 말로만 ‘정책 정당’을 외칠 게 아니라 현실을 고려해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강창욱 전웅빈 이경원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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