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정승훈] 숙적의 선전을 기원하며

Է:2010-05-2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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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정승훈] 숙적의 선전을 기원하며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 24일 열렸던 축구 한·일전을 꼼꼼하게 지켜보지 않았다. 저녁 먹는 자리에서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봤을 뿐이다. 박지성의 골 장면은 전반전이 끝난 후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봤고, 박주영의 페널티킥 골 장면을 볼 때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경기 결과는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 일본 언론과 네티즌들의 반응이 오히려 더 흥미로웠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축구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나왔고 한국 축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속내가 이곳저곳에서 배어 나왔다. 뿌듯함이 느껴진 것도 잠시, 안타까움이 생겨났다. 한국의 영원한 라이벌, 일본 축구가 그만큼 약해졌다는 건 한국 축구가 반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0년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축구는 한 수 아래로 여겨졌다. 90년 이전까지 한국은 일본전에서 30승11무7패를 기록했다. 압도적인 승률이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 축구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오래 전부터 ‘타도 한국’을 내세우고 유망주들을 대거 브라질로 유학 보내는 등의 장기 투자가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90년 이후 한국팀의 일본전 전적은 10승9무5패다. 여전히 한국이 우위에 있지만 90년대 이전만큼 압도적이진 않다. 그만큼 일본 축구가 성장했다는 얘기다.

1994 월드컵 출전권을 놓고 겨루던 1993년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에서 일본을 만난 한국은 0대 1로 패했다. 일본의 스트라이커 미우라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패한 뒤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일본 축구의 성장에 혀를 내둘렀다. 그 경기 후 일본은 사상 최초의 월드컵 진출에 한 발짝 다가섰고 한국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한국에서 난리가 난 것은 당연했다.

물론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북한을 3대 0으로 꺾은 반면 일본은 종료 직전 이라크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2대 2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월드컵 티켓은 한국의 차지가 됐다. 우리에겐 ‘도하의 기적’으로, 일본 국민에겐 ‘도하의 비극’으로 기억되는 그날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4년 후 1998 프랑스 월드컵에 나란히 출전했다. 한국은 네덜란드와의 조별 예선 2차전에서 0대 5라는 굴욕적인 스코어로 패하며 대회 도중 감독이 바뀌는 수모를 겪었다. 일본 역시 조별 예선에서 3전 전패하며 탈락했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 일본은 한국과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다. 조별 예선에서 아르헨티나와 맞붙은 일본 축구의 모습은 이전과 전혀 달랐다.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치열한 미드필드 싸움을 벌이며 선전했고 일본은 아쉽게 0대 1로 패했다. 그 경기를 본 한국의 축구 팬들은 충격을 받았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팀과 맞붙어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이탈리아리그 세리에 A에서 맹활약한 나카타 히데요시를 비롯 오노 신지, 이나모토 준이치 등 일본의 소위 골든 제너레이션 멤버들의 맹활약은 한국의 축구인들이 결정적으로 긴장하는 계기가 됐다. 자칫하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은 예선 탈락하고 일본은 16강에 진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생겨났다. 히딩크 감독의 영입과 대표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의 배경에는 일본 축구가 한국 축구보다 앞서나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절박감도 분명 깔려 있었다.

라이벌의 존재는 그런 것이다. 한국 국가대표팀에게 일본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꼭 이겨야 하는’ 상대였다. 일본 국가대표팀에게도 한국은 비슷할 것이다. 서로에게 이기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상대도 부쩍 성장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2010 월드컵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한다.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함성이 크게 울려퍼지길 바란다. 더불어 한국의 영원한 숙적, 일본팀의 선전도 기대한다.

정승훈 체육부 차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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