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 (木) 죽고 살 일 아닙니다

Է:2010-05-2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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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 (木) 죽고 살 일 아닙니다

찬송 :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313장(통 35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후서 3장 12∼18절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분쟁, 사고는 대부분 사사로운 말 한마디나 하찮은 사건에서 비롯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죽고 살 일도 아닌 하찮은 일로 서로 열을 올리고 싸우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첫째로 따지지 맙시다. 따진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방의 시비를 밝히어 가리기 위해 덤비는 것’을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유일한 재판장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떠한 이유에서도 형제의 시비를 밝히기 위해 덤벼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는 교만한 행위로서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악이 됩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타락하고 부패한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죄와 시비를 논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시비를 따지는 것은 그 사람에게 엄청난 상처를 줍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가 잘못 생각해서든지 아니면 조금 부주의하거나 능력이 부족해서 잘못했을 때에는 자기를 자책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열을 내면서 따지고 덤벼들면 미안한 감정 대신 오히려 서운하고 괘씸한 생각만 생깁니다. 따지는 일은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이요 오히려 반감만 불러일으키고 또 다른 불평과 비판, 다툼만 가져올 뿐입니다.

둘째로 관용해야 합니다. 관용의 기독교적 의미는 ‘남의 잘못을 꾸짖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항상 너그럽게 이해하고 용서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참다운 연합이 형성됩니다. 또한 사랑이 나타납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를 너그럽게 이해하고 온유하게 대해주는 자에게 애정을 느끼고 사랑하게 됩니다. 성경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셋째로 덮어주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서로 덮어주어야 합니까?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인류 신앙의 열조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도 실수투성이였습니다. 당대의 의인으로서 노아 홍수를 이겨낸 노아도 술 마시고 실수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원해낸 모세도 실수했습니다. 위대한 왕인 다윗도 실수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도 실수투성이였고 사도 바울 역시 실수했습니다. 온전한 인간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후손을 통하여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죽고 살 일이 아닌 모든 일을 덮어줌으로써 영적인 복을 충만히 받아야겠습니다.

기도 : 실수와 상처로 얼룩진 보잘것없는 우리를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덮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만 보고 따지며 관용을 베풀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너무 많습니다. 겉옷을 많이 준비하여서 남의 실수도 덮어줄 수 있는 넉넉한 믿음의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요셉 목사(선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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