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고갯길, 발길닿는 곳곳 역사의 숨결이… 경북 영주 ‘죽령 옛길’

Է:2010-05-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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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고갯길, 발길닿는 곳곳 역사의 숨결이… 경북 영주 ‘죽령 옛길’

청운의 뜻을 품은 영남 선비들은 과거 길로 문경새재를 선호했다. 영주의 죽령을 넘으면 죽죽 미끄러지고, 김천의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며, 문경의 새재를 넘으면 경사스런 소식을 듣는다는 근거 없는 속설 때문이었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던 영남대로 세 고갯길 중 가장 오래된 길은 신라 아달왕 5년(158년)에 죽죽(竹竹)이라는 사람이 개척한 죽령 고갯길.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장림리를 연결하는 고갯길은 오르막길 30리와 내리막길 30리로 모두 60리길. 괴나리봇짐을 진 나그네들은 구름도 울고 넘는다는 죽령 아흔아홉 구비길을 걷기 위해 짚신 두세 켤레를 허리춤에 차야 했다.

소백산맥 제2연화봉과 도솔봉 사이의 잘록한 허리인 죽령(698m)은 신라와 고구려의 경계로 양국은 서로 죽령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고구려는 장수왕 말년(470년)에 죽령을 차지했고, 신라는 진흥왕 12년(551년)에 죽령 이북의 고을 열 곳을 점령했다. 고구려 영양왕 1년(590년)에는 온달장군이 실지를 회복하기 위해 신라와 전투를 벌이다 전사하기도 했다.

죽령 고갯길은 새로 관직을 받고 부임하거나 퇴임하는 관리, 물건을 팔러 다니는 장사치들로 늘 북적거렸다. 당연히 고갯길 곳곳에는 길손들의 목을 축이고 허기를 달래주는 주막들이 들어서 주막거리를 형성했다. 술집, 떡집, 짚신가게, 객점, 마방으로 이루어진 주막거리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소백산역(옛 희방사역) 자리에 있던 무쇠다리 주막거리. 그밖에도 느티정, 주점 주막거리, 고갯마루 주막 등 네 곳의 주막거리가 문전성시를 이뤘다.

일제 강점기 때까지 번성했던 죽령 고갯길은 1941년에 중앙선 철도가 완공되면서 인적이 끊기기 시작했다. 현재의 죽령옛길은 역사와 전설이 서린 옛 고갯길 일부를 복원한 자연생태로. 죽령옛길은 풍기온천 앞에 있는 옛 찰방역이 출발점이다. 하지만 아스팔트로 포장돼 옛길의 흔적은 희방사옛길의 출발점이기도 한 수철리 소백산역에서 시작된다.

소백산역에서 기찻길 옆 도로를 따라 조금 걸으면 거대한 교각 위에 놓여진 중앙고속도로가 하늘을 난다. 기찻길과 고속도로는 이내 소백산 터널 속으로 사라지고 죽령옛길은 민들레 홀씨가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사과밭 사잇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소백산 장승 부부 앞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 죽령옛길은 이내 다래덩굴과 으름덩굴이 터널을 이룬 초록숲으로 빨려든다.

죽령옛길을 품고 있는 숲은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뜸한 덕분에 식생이 다양하다. 신나무 물푸레나무 서어나무 등 온갖 수목과 개별꽃 피나물 애기똥풀 등 형형색색의 야생화, 그리고 계곡을 뒤덮은 이끼 등이 무성한 죽령옛길 숲은 산불 등 재해가 아니면 더 이상 식생이 변하지 않는 완벽한 상태의 숲.

19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죽령옛길에는 수많은 이야기도 전해온다. 지금은 죽령고개를 관통하는 4.6㎞ 길이의 중앙고속도로 죽령터널이 뚫려 5분이면 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죽령 고개를 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당연히 노잣돈을 노린 산적이 들끓지 않을 리 없다. 어느 할머니가 잃어버린 아들 이름을 부르는 척 산적들의 잠든 동태를 관군에게 알려줘 소탕했다는 ‘다자구야 들자구야’ 전설도 죽령옛길을 품고 있는 소백산이 얼마나 깊고 험한 산인지를 말해준다.

죽령옛길은 청아한 목소리의 계곡과 함께 산을 오른다. 초록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던 계곡이 갑자기 환해지면서 넓어지는 곳이 있다. 와폭을 타고 내려오는 물빛마저 초록색으로 물든 계곡은 풍기군수 시절의 퇴계 이황이 형님이자 충청감사인 온계 이해를 마중하고 배웅할 때 잠시 쉬어갔던 곳.

퇴계 만큼 죽령 고갯길과 인연이 깊은 사람도 드물다. 단양군수로 재직하던 퇴계가 풍기군수로 발령 받고 사랑하던 관기 두향을 두고 넘었던 고개도 죽령이다. 또 벼슬을 사양하고 낙향하기 위해 ‘눈 덮인 죽령고개 하늘높이 솟았는데 / 소 떼가 달려가듯 세찬 바람 불어오네 / 은혜로운 임의 명령 언제나 내릴는지 / 온갖 병든 외로운 신하 간절히 바라노라(雪嶺截半空 陰風如逐萬牛雄 九天恩何時下 百病孤臣正渴衷)’는 시를 남긴 곳도 죽령이었다.

숲이 울창해질수록 죽령옛길이 조금씩 가팔라진다. 주점 주막거리는 낙엽송이 울창한 죽령옛길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주막은 허물어져 사라진지 오래고 석축은 잡초 우거진 낙엽송 군락 속에서 옛 영화를 반추하고 있다. 담쟁이덩굴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낙엽송을 감고 올라간 모습은 영락없는 원시림.

햇빛 한점 스며들지 않는 울창한 죽령옛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존재는 가녀린 얼굴의 야생화들. 길섶에서 무리지어 한주먹씩 핀 야생화가 해맑은 얼굴로 주모 대신 나그네들을 맞는다. 이름 모를 나무에서 낙화한 하얀 꽃잎으로 뒤덮인 오솔길은 한 폭의 점묘화. 꽃길에 취해 걷다보면 죽령옛길은 금세 고갯마루에 선다. 그리고 그곳에선 현대판 죽령주막이 21세기 나그네들을 맞고 있다.

영주=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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