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동수] 슬로건 선거의 虛實
‘슬로건(Slogan)’은 정치 스포츠 상업광고 등 많은 영역에서 사용된다. 슬로건은 우리말로 ‘표어’라고 옮길 수 있다. 어원은 스코틀랜드인들이 위급할 때 내는 고함소리 ‘슬루어그게엄’(sluaghghairm)으로 지금은 대중의 특정한 행동을 유발하는 선전 문구를 지칭한다. 간결(簡潔) 적시(適時) 신기(新奇) 인상(印象)적이고 외치기 쉬워야 하는 것이 슬로건의 요체다.
정치권은 슬로건을 가장 즐기는 영역이다. 각종 선거 때 슬로건 사용은 절정에 이른다. 관련 학자들은 역대 우리나라의 대선 슬로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1987년 노태우 대통령 후보 진영의 ‘보통 사람의 시대’를 꼽는다. ‘보통 사람’ 콘셉트가 당시 권위주의 쇠퇴와 시민사회 도래란 역사적 조류에 잘 부합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내건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는 슬로건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슬로건은 비전과 목표를 압축해 보여주는 장점이 있지만 부작용도 따른다. 대중의 이성과 합리적 판단보다는 정서와 감성에 호소하는 속성 때문이다. 또 진실을 표상하기보다 선동적·허위적인 것을 절대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히틀러나 스탈린 시대의 슬로건이 대표적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슬로건 대결이 치열하다. 한나라당은 ‘일자리 먼저, 서민 먼저’로, 민주당은 ‘사람사는 세상, 참 좋은 지방정부’를 내걸었다.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시민이 행복한 서울, 세계가 사랑하는 서울’을,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사람이 사는 사람특별시’를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한다.
어떤 슬로건이 유권자들에게 더 먹힐까. 가로에 어지러이 내걸린 후보들의 슬로건은 대동소이해 보인다. 하나같이 화려하고 근사한 공약들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곤혹스럽다. 그나마 소속 정당이 명기된 자치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들은 정당을 보고라도 투표할 수 있지만 정당추천이 없는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거는 ‘깜깜이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슬로건에 숱하게 속아 왔다. 겉만 번지르르한 슬로건을 믿고 찍었다가 선거 후 실망하고 배신감까지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용과 실질이다. 투표일이 임박해 올수록 민심을 어르고 휘어잡으려는 정당과 후보자들의 슬로건 선동은 극성을 부릴 터이다. 쉽게 현혹당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성숙하고 냉철한 모습을 보여줄 때다.
박동수 논설위원 d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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