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지방선거-생애 첫 투표 이경순 할머니] “여든살 넘어 주민증 생겼어요”
서울 석관동에 사는 이경순(86) 할머니는 다음달 2일 지방선거에서 생애 첫 투표를 한다. 혼란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살아오던 이 할머니는 지난해 말 비로소 주민등록을 마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았다.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 처음 선거권을 행사하게 된 할머니는 23일 “꼭 투표하러 가겠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1924년 전남 보성군 예당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찍 사망했고, 홀어머니 아래서 어렵게 성장하다 16세가 되던 1940년 결혼했다. 하지만 혼인신고를 할 틈도 없이 결혼생활은 사흘 만에 끝나고 말았다. 일제 징용으로 끌려간 남편은 해방이 되고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 할머니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가족과 헤어졌고, 폐지를 주워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왔다. 행정기록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았던 할머니에게 주민등록증을 마련해 준 것은 이웃의 사랑이었다.
이 할머니의 집 근처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지은(55·여)씨는 지난해 5월부터 오춘규(58) 석관동장과 함께 할머니의 주민등록증을 위해 발품을 팔았다.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에서 복통 치료비로 무려 15만원을 썼다는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시작한 일이었다. 이씨와 오씨는 서울가정법원과 서울 성북구청을 숱하게 오가며 할머니의 존재를 증명했다. 서울가정법원은 이 할머니에게 ‘한양이씨(漢陽李氏)’라는 성과 본을 내줬다.
마침내 주민등록증이 나온 지난해 12월 21일, 이 할머니는 주민센터에서 “이게 나인가” 하며 한참 주민등록증을 들여다봤다. 할머니는 미용실로 달려가 이씨에게 “귀한 것을 얻어줘 고맙다”고 말하곤 “좋다, 좋다”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이씨와 오씨는 지방선거일 아침에 할머니를 직접 투표소로 모시고 갈 계획이다. 이씨는 “할머니께서 ‘나도 투표를 하러 갈 것’이라고 계속 들떠 계신다”며 웃었다. 오씨는 “할머니가 한글과 숫자를 모르기 때문에 후보들의 이름과 공약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이라면서도 “기쁘게 투표를 하게 해 드리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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