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배우는 것이 과연 전부일까… 아트선재센터서 ‘김범 개인전’
작가 입장에서는 다분히 마뜩잖겠지만 그의 부모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아버지는 광화문 앞 이순신 장군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세중(1928∼86)이고 어머니는 ‘겨울바다’ ‘설일’(雪日) 등 주옥같은 시를 지은 김남조(83) 시인이다. 부모에 이어 서울대를 나온 뒤 회화, 드로잉, 비디오, 설치 등 다양하고 폭넓은 매체로 작업하는 김범(47).
그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전시를 열어도 얼굴 사진 촬영은 극구 사양한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지난 15일 개막해 8월 1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도 ‘얼굴 없는 작가’를 고집했다. 이는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이루겠다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이자 독립정신의 발로가 아닐까.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은 그의 고집만큼이나 독창적이다. 3층에 전시된 ‘교육된 사물들’에서는 교육을 받는 사물들이 등장한다. 의자에 앉아 칠판을 바라보며 비디오 강의를 듣는 수강생은 사람이 아니라 선풍기, 주방세제, 저울, 주전자 등 각양각색의 사물들이다. 작가는 이 작품 제목을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로 지었다.
한쪽에서는 돌이 강의를 듣고 있다.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 작품에서는 실제 국문학 전공자가 강사로 등장해 돌에게 정지용의 시에 대해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에서는 나뭇가지 위에 매달린 돌이 강사로부터 “너는 돌이 아니라 한 마리의 새”라고 주입받는다.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에서도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교육이 진행된다.
“딱히 교육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예요. 교육이라는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의미도 달라질 수 있잖아요. 대상에 어떤 의미가 담기는 과정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돌을 교육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제작 의도나 정해진 용도가 있는 다른 인공물들과는 달리 돌에는 가장 그런 의미가 적었기 때문이죠.”
2층에 전시된 영상작업 ‘볼거리’는 ‘동물의 왕국’에서 흔히 봤던 야생동물들이 등장하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이상하다. 치타가 영양을 쫓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영양이 치타를 쫓고 있다. 또 ‘말 타는 말’은 달리는 말 위에 사람이 아닌 또 다른 말이 올라타 달리는 장면을 담은 영상으로 약육강식과 주종관계 등 익숙한 관계의 뒤집기를 시도한 작품이다.
눈치라는 이름의 개 이야기를 담은 책 ‘눈치’도 하나의 작품으로 전시된다. ‘변신술’ ‘고향’에 이어 작가가 직접 글을 쓰고 군데군데 삽화를 그려넣은 3번째 아티스트 북 ‘눈치’는 개 그림이 한 컷도 등장하지 않지만 읽는 이에게 눈치라는 가상의 개 이미지를 실감나게 전달하면서 현실에서 이미지라는 것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생각하게 한다.
1995년 석남미술상, 2001년 에르메스 코리아미술상을 받았고 지난해 미국 순회전에 이어 내년 클리블랜드 미술관 전시를 앞두고 있는 작가는 일상적인 이미지를 뒤집어 표현함으로써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미지의 진실성과 허구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02-733-8945).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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