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칼럼] 어머니의 선물

Է:2010-05-1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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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용 칼럼] 어머니의 선물

“모친상을 겪으면서 친척의 힘과 人命은 在天임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한 달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두 차례의 수술을 이겨낸 후 퇴원을 이틀 앞두고 홀연히 가시는 바람에 황망했다.

임종 직후 잠깐 병실 밖으로 나왔을 때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어머니가 평소 나를 어떻게 부르셨지?’하는 것이었다. 나를 불러주실 어머니가 더 이상 안 계시다는 상실감 때문이었을까? 호칭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이름을 부르지도, 남들처럼 ‘애비야’라고 부르시지도 않았다. 겨우 기억을 더듬어 보니 거의 호칭 없이 말씀하셨고, 가끔 “야∼야!”라고 부르신 것 같다. 경상도 말로 ‘이 아이야’의 준말이지 싶다. 어머니에게는 50대 후반의 아들이 여전히 아이였던 것이다.

지난 어버이날 누님과 함께 차로 다섯 시간이나 걸려 고향의 어머니 산소를 찾았다. 이날 고향 마을에는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부모를 뵈러 오느라 3∼4배나 교통체증이 심했다고 한다. 어버이날은 시골마을에서 훨씬 더 정겹게 느껴졌다.

아버지와 일찍 사별한 후 어머니는 외아들과 50여 년을 같이 사셨다. 이런 사정을 아는 친구와 친지들이 얼마나 슬프냐고 위로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 울컥 치미는 서러움 외엔 비통함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내 안의 심리 기제가 상실감을 줄여주기 위해 작동하는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는 ‘50년을 어머니와 친구처럼 살아와 행복했어. 어머니도 자식과 오래 행복하셨을 거야’라며 애써 자위하고 있다.

모친상을 치르면서 절실히 깨달은 게 ‘친척의 힘’과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란 거였다. 넉넉잖은 친척들이 내가 그들이 상을 당했을 때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액수를 부조하며 애통해했다. 고향의 장례식 땐 도시의 먼 친척들도 많이 찾아주셨다. 그분들은 어머니의 정 많고 깨끗한 삶에 대해 많이 말씀하셨다. 그 대화 속에서 내가 몰랐던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하게 됐고 이런 내용을 묘비에 담았다. 경조사, 특히 조사에서 친척들의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어머니 별세 후 계속된 의문이 있다. 92세에 심장박동기를 심는 수술을 하고 폐 부종으로 악성 폐렴이 유발됐고 신장 기능도 거의 망가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여의도성모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의 헌신적인 치료로 기적처럼 호전됐다. 그런데 왜 사시기를 마다하셨을까.

특히 퇴원을 이틀 앞두고 일반 병실로 옮긴 후 휠체어 산책을 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으셨던 어머니는 그날 밤 “(가는 길)붙잡지 마라, (퇴원)안 된다”며 일체의 치료를 거부하셨다. 자식과 정을 떼시려는지 “우린 남이다”라며 고개를 저으시면서도, “행복하게 살아라”는 말씀을 수백 번도 더 하셨다. 그리고는 급격히 병세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

밤 11시께 교회 목사님이 와서 기도해 주셨고 5분 후에 소천하셨다. 모태신앙인 어머니는 이번 병상에서 50여년 전 명주실 장사를 할 때 양(量)을 속인 일을 고백하며 모든 것을 털고 가셨다. 장례 후 서랍정리를 했더니 누런 옛 봉투에 어머니의 마지막 십일조 37만원이 들어 있었다.

위험한 수술을 두 차례나 이겨내셨으면서 갑자기 운명하시다니….

“어머니 왜 그러셨어요? 하나님 왜 그러셨어요?” 하고 수없이 되물었다. 그런 후에야 답을 얻었다. “너희들은 인간의 힘(의술)으로 살렸다고 생각하겠지만 생명을 주관하는 것은 나(하나님)다.”

돌이켜 보니 이미 어머니는 당신의 임종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몇 달 전부터 죽음을 암시하는 말씀들을 수차례 하셨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가 목사님의 마지막 기도를 기다리시느라, 가족들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볼 수 있었다. 운명 직후 눈꺼풀을 올리니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렸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자식들과의 이별을 아셨던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답을 얻고서 마음이 한결 편하다. 인명은 재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되새겨 본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형용 수석 논설위원 h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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