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한국교회 함께 했다… 30주년 맞아 기독교 역할 역사적 평가 시급

Է:2010-05-1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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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을 종식시키기 위해 일어났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30주년을 맞았다. 많은 희생자를 낸 채 진압됐지만 훗날 한국 사회 민주화의 초석으로 인정된 5·18 전후에 한국교회는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는 역사적 재평가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1980년 5월 18일부터 10일간 계엄군에 의해 수많은 시민이 살해당하고 폭도로 몰리자 기독교인들은 기도회와 수습위원회에 적극 참여했으며, 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사실 5·18이 있기 전 반군부독재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80년 2월부터 내놓은 시국성명서였다. 19일부터는 광주기독병원 150여명의 직원들이 부상한 시민들을 위해 아침마다 눈물로 기도했다. 살육의 광란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통치와 치유를 기대한 것이다.

22일 15명으로 구성된 5·18수습대책위원회에는 이성학 국제사면위원회 전남지부장, 명노근 전남대 교수, 조아라 YWCA 회장, 김천배 YMCA 이사, 이기홍 광주변호사회장, 이영생 YMCA 총무 등 기독교인 8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계엄군과 협상을 벌였으며, 성명서를 통해 광주의 진상을 알렸다.

5·18 이후 공식적인 첫 집회는 25일 목포시기독교연합회가 목포역 광장에서 개최한 비상구국기도회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선교국은 6월 9일부터 한 주간을 기도주간으로 정했으며, 같은 달 8일 완산교회에서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도회가 열렸다. NCCK는 7월 7일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을 면담하고 연행자의 소재 확인과 가족면회 허용,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했다.

8월 5일 청주산업선교회 소속 4명의 회원은 유인물을 제작·배포하다 구속됐다. 10월에는 한신대 학생들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숨진 신학과 유동운씨 추도식 후 계엄 철폐를 외쳤다. 이때 146명의 학생이 연행되고 휴교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82년 5월 18일에는 광주YWCA 회관에서 기장 전남노회 교회사회위원회와 광주기독교연합회가 주관하는 가운데 2000명이 참석하는 예배를 드렸다. 이후 교회는 지속적으로 추모예배와 기도회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려왔다.

광주 ‘오월어머니집’ 대표 안성례(73·여·광주 고백교회 은퇴장로)씨는 “30년 전 5·18 당시의 피울음은 아직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면서 “군부독재를 획책한 당사자들은 지금이라도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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