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⑮ 백제가 일본에 건넨 칠지도

Է:2010-05-1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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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⑮ 백제가 일본에 건넨 칠지도

일본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 신궁은 기원전 660년 신무천황이 나라를 평정할 때 사용했다는 신검을 모신 곳이랍니다. 이곳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특수상자가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열어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금기사항이었답니다. 그런데 1873년 이 신궁을 관리하고 있던 마사토모가 금기를 깨고 상자를 열어 온통 녹이 슨 철제 칼 한 자루를 발견했습니다.

길이 75㎝인 이 칼은 가운데 곧은 칼날 양쪽에 작은 칼날이 3개씩 붙어있다고 해서 칠지도(七枝刀)라는 이름을 얻었지요. 칼 앞뒤에 새겨진 61자(字)의 기록으로 보아 근초고왕 재위 때로 추정되는 369년에 백제 왕세자가 왜왕에게 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명문에 대한 해석을 두고 한·일 간의 견해 차이가 극명하게 대립하게 됩니다.

앞면에는 ‘태화 4년(369년) 음력 5월 16일 병오날 정오에 백 번이나 담금질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노라. 모든 군사를 물리칠 수 있도록 후왕에게 주노라’라고 적혀있고, 뒷면에는 ‘선대 이래로 아무도 이런 칼을 가진 일이 없는데 백제 왕세자는 덕이 있는 까닭으로 왜왕 지(旨)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까지 길이 전해 보존토록 하라’고 기록돼 있지요.

일본은 ‘백제가 칠지도와 칠자경(七子鏡)을 바쳤다’는 니혼쇼키(日本書紀) 진구(神功) 42년(372년)의 기사와 결부시켜 “칠지도는 백제 왕세자가 일본 왕에게 하사한 것이 아니라 조공으로 바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일본이 고대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뒷받침하는 물증이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1953년 자기네 국보로 지정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광복후 63년에 북한 학자 김석형이 일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칠지도가 5세기 때 강성했던 백제왕이 황제의 입장에서 제후 성격의 지역 통치자(왜왕)에게 하사한 것이라고 내세우면서 뜨거운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죠. 이후 칠지도는 제작연도와 동기에 대해 한·일간 주장이 상반돼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중에 노중국(계명대 사학과 교수) 백제학회 회장이 최근 칠지도의 길이를 바탕으로 당시의 도량형을 밝히는 학술서 ‘백제사회사상사’(지식산업사)를 펴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노 교수는 이 칼을 백제 왕실에서 직접 만들었을 것이므로 정확한 도량형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당시 쓰였던 후한척(23㎝) 진전척(23.1㎝) 서진척(24㎝) 동진척(25㎝) 등과 비교했지요.

칠지도는 1척이 25㎝인 동진척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정확하게 3척이어서 당시 백제는 동진척을 표준도량형으로 사용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칠지도에는 동진의 연호가 새겨져 있으며 근초고왕은 동진으로부터 ‘진동장군영낙랑태수’라는 작호를 받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가 하사품이냐 진상품이냐를 놓고 벌이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이런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 칠지도가 백제의 숨결이 깃든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면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요.

이광형 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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