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제복집단과 예술가
중진작가 한수산씨가 펴낸 장편 ‘용서를 위하여’는 굴곡진 시대의 자화상이다.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필화사건의 전말을 기록하면서 관용과 용서를 외쳤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3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시점은 1981년이다.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소설 ‘욕망의 거리’ 5월 22일자가 신군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회사 수위를 이렇게 빗댔다. “그 꼴 같지 않게 교통순경의 제복을 닮은 수위 제복을 여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여튼 세상에 남자놈 치고 시원치 않은 게 몇 종류 있지. 그 첫째가 제복을 좋아하는 자들이라니까. 그런 자들 중에서 군대 갔다 온 얘기 빼놓으면 할 얘기가 없는 자들이 또 있게 마련이지.”
5공 정권은 소설이 군(軍)과 민(民)을 이간시킨다며 작가와 기자들을 보안사로 끌고가 가혹행위를 했다. 제주에 머물고 있던 작가는 황망 중에 비행기로 압송돼 수모와 고초를 겪었다. 그의 절친한 시인 박정만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한씨는 자신을 괴롭힌 보안사령관 노태우씨가 88년 대통령에 취임하자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며 일본으로 떠났다.
돌이켜 보면 이 정도 표현에 문인과 언론인을 굴비 엮듯 잡아들이던 억압적 상황에 전율하게 된다. 지금 누리는 언론의 자유가 이분들의 희생 위에 얻어진 과실이라고 생각하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예로부터 예술가는 제복과 친하지 않다. 자유로운 영혼들은 상명하복의 조직에 반감을 갖는다. 왕조시대의 탐관오리, 식민지 시대의 칼 찬 일경(日警), 5·16 이후 사회를 숨막히게 하던 군사문화 등 제복의 지배에 대한 저항과 불신의 몸짓이다. 제복집단도 예술가들의 일탈과 야성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제복이 미움 받는 시대는 불행하다. 군인, 소방관, 경찰 등 위험을 담보로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합당한 예우를 받아야 한다. 사회가 이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제복집단이 우월한 도덕성과 기율을 가지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천안함 사태를 통해 제복에 대해 약간이나마 존경의 염이 싹튼 것은 소득이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제복집단에 대한 부당한 폄하도, 과도한 예우도 없어야 한다. 오로지 제복 스스로 빛을 발해야 한다. 나아가 가장 경직된 제복과 가장 유연한 예술가가 서로의 가치를 인정할 때 공동체는 또 한단계 성숙할 것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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