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설동순 (6) 스물넷 처녀, 서른넷 총각을 만나다

Է:2010-05-0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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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설동순 (6) 스물넷 처녀, 서른넷 총각을 만나다

“참말로 속 터지네. 가시내가 뭣이 잘났다고 오만 선자리 다 마다허고 저러고 집구석에 콕 처박혀 있으까잉∼!”

내가 스물넷 되던 해, 어머니로부터 이런 잔소리를 하루에 열 번은 들었다. 그때로 치면 스물넷은 처녀 나이로는 꽉 차다 못해 넘치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중신이 안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경찰서에서 수사과장으로 근무하던 오빠 덕인지,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선 자리가 줄을 섰다. 선 본 상대 중에는 지서 주임도, 순경도, 선생도 있었다. 몇몇은 내가 좋다고만 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는 매번 선을 보고 돌아오면 미적미적 답을 안 하고 두 번 다시 만나러 나가지도 않았다. 다섯 살 밑의 막내 동생도 벌써 상고를 졸업하고 한국전력에 입사한 마당에 말만한 처녀애가 시집을 안 가고 버티고 있으니 어머니로서는 복장 터질 일이었다. “야야, 한번 말을 혀 봐라. 뭣이 마음이 안 든다는 거여, 대체?” 아무리 다그쳐도 나는 고개만 저었다. 어머니는 가슴을 탕탕 치며 눈을 흘기셨지만,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는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상대를 재고 고르느라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선 자리에 누가 나오든 나는 제대로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당장 시집가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자라오며 내 뜻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데 대한 소극적인 반항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때 눈을 크게 뜨고, 돈 많고 직업 확실하고 신앙생활까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현명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영악한 계산은 할 줄 모르는 순진한 시골 처녀일 뿐이었다.

그때는 이미 초등학교 졸업하고 5∼6년 다녔던 대나무 공장도 그만뒀고, 집에서 농사와 살림만 돕고 있었다. 때때로 뒷산의 사방사업, 즉 나무 심는 일에 불려 나가기도 했다. 온 나라가 나무 심는 데 열심이었기 때문에 며칠에 한 번씩 동네 젊은이들이 사방사업에 총동원됐다.

그날도 남자들이 삽으로 파 놓은 구덩이에 묘목을 놓아주고, 흙이 다 덮이면 발로 꼭꼭 밟아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안면이 있는 사방관리소 직원 한 분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설양, 우리 직원 중에 심성 착한 이가 하나 있는디 만나 볼텨?”

내가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자 “실은 이이가 전부터 설양이 맘에 든다고 다리 놔 달라고 하도 졸라서 말이여”라면서 “나이는 좀 많긴 허지만 학력도 괜찮고 집이 남원인디 그럭저럭 살 만한 집안인가벼”라고 설득해 왔다.

알고 보니 이미 사방사업 현장에서 몇 번 본 이였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듯해 총각인 줄도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나보다 열 살이 많은 서른넷이었다. 사방관리소 정식 직원도 아니고 임시직이었다. 그동안 선 본 사람들과 비교하자면 턱도 없는 조건이었지만, ‘한 번 만나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부모님을 통하지 않고 들어온 소개 자리였기 때문일까.

그렇게 몇 번을 만나 밥도 먹고 산책도 하는 ‘데이트’를 해봤다. 그런데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 보니 소개받을 때 들은 말은 ‘고향이 남원’이라는 것 빼고는 거의가 사실이 아니었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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