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시선] 그리스를 지켜보며
연재를 시작하며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장하준(47) 교수가 오늘부터 매월 한 번씩 And 지면을 통해 그만의 시선으로 경제를 읽어드립니다. 장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의 저서에서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에 반론을 펴왔고, 2005년 경제학 지평을 넓힌 공로로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 수상했습니다. 최근 탈고한 책 ‘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그들이 자본주의에 관해 알려주지 않는 스물세 가지)’은 9월부터 세계 각 국에서 출간됩니다. 케임브리지에서 온 첫 원고에는 “금융위기,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는 시선이 담겼습니다.
몇 달을 끌며 국제 금융시장을 흔들어온 그리스의 금융위기는, 결국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모두 1460억 달러라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위기가 종결됐다’고 하지 않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표현한 것은 이번 구제금융으로 그리스, 더 나아가 EU,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계경제가 위기를 벗어나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구제금융 대가로 그리스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4%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올해 말까지 GDP의 6.5% 선으로 낮추고, 2014년까지는 GDP의 3%로 낮추는 살인적인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무원 봉급 및 연금 삭감, 사회복지 지출의 대규모 삭감, 각종 세금 인상 등 혹독한 조처들이 단행될 것이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구제금융의 핵심 조건으로 돼 있는 재정지출 삭감이 과연 그리스 경제를 회복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경기가 하락세에 있을 때 정부 지출을 줄이기보다 늘려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럴 때 재정적자를 줄인다고 정부 지출을 삭감하면, 수요가 줄어 경제는 더욱 가라앉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세수가 줄어 재정적자는 도리어 더 늘어나게 될 확률이 높다. 바로 이 때문에 미국 영국 등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나라들도 그리스와 비슷하게 GDP의 11∼12% 규모 재정적자를 유지하면서 경기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런 ‘상식’이 그리스와 같이 힘없는 나라에는 통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1998년 IMF 구제금융을 받을 때,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정부 재정상태가 좋은 나라였음에도 재정흑자를 내도록 강요받았던 것이 좋은 예다. 우리는 그나마 경제가 계속 곤두박질치자 IMF가 뒷북치는 식으로 조건을 자꾸 완화해 결국 98년 말에 가서는 GDP의 5%에 해당하는 재정적자를 내도록 용인해줬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이자율을 80%로 올리고 재정적자를 줄인다며 정부가 주던 식량보조금을 대규모 삭감하는 등 극단적 조치를 취해 결국 폭동이 일어나고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는 사태를 겪었던 일이 있다.
그리스도 지금 계획되고 있는 재정 삭감 규모가 워낙 엄청나기 때문에 그 조건을 고수하다가는 경제가 헤어날 수 없는 하락세에 빠져들 것이다. 게다가 그리스는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높기로 유명한 나라인지라, 구제금융 이전에 정부가 내놓은 재정적자 삭감계획에 반발해 이미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번 구제금융으로 그리스 정부가 원래 내놓은 것보다 더 혹독한 정책들이 시행되면 그 반대는 더 심해질 것이고, 구제금융 조건 완화에 대한 압력은 더 거세질 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지속적인 침체나 그리스 국민의 정치적 저항 등을 이유로 EU와 IMF가 구제금융에 부과된 정부 예산 삭감 조건을 완화해주면, 구제금융을 위해 돈을 내놓은 다른 EU 회원국들이 크게 반발할 것이다. 특히 이번에 ‘물주’격이 된 독일이나, 자기들도 금융위기 문턱에 서 있음에도 100억 유로나 내놓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저항이 클 것이다.
이처럼 국민적 저항과 EU 회원국 압력 사이에서 진퇴양난이 되면, 그리스는 국가부도를 선언하고 유로화 체제에서 탈퇴해 통화가치를 낮추며 경제회복을 모색하는 길을 택할 수도 있다. 국가부도를 내면 경제가 영원히 망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부도를 내는 것이 경제를 빨리 재건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예가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외채 위기에 부닥치자 일단은 IMF 처방을 따랐지만 그에 따라 경제가 곤두박질치자 과감하게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처음에는 국가부도 때문에 아르헨티나가 영원히 망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완강하게 저항하던 해외 채권자들도 결국은 부채 대부분을 탕감해주고 일부라도 돈을 받는 식으로 타협했다. 이렇게 외채 부담에서 벗어난 아르헨티나 경제는 2003년부터 2007년 사이에 1인당 소득이 연간 7% 성장하면서 완전히 회복했다. 그리스도 사정이 너무 나빠지면 국가부도를 선택하게 될 수도 있다.
이에 더해, 그리스 문제가 어떤 식으로 해결되건 현재 그리스와 비슷한 재정적자 문제를 안고 있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영국 등 다른 선진국도 유사한 위기에 처하게 될 수 있다(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도 심각하지만 미국은 기축통화국이기에 위험성이 덜하다). 이미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비롯해 국제 자본시장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이 부도 사태에 처하면 작은 나라들이라 어떻게 넘긴다고 해도,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 큰 나라에서 외환위기가 일어나면 국제 금융시장은 다시 급격히 붕괴될 수 있다.
그리스 사태는 단순히 유럽 변두리의 ‘계획 없이 사는 나라’ 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이 아니다. 이는 IMF식 구조조정으로 대표되는 현재 국제 금융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한편, 이번 금융위기가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적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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