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지름신은 노동을 낳는다
광고는 늘 우리 욕망의 한가운데를 자극한다. 디지털 카메라가 처음 대중화됐을 때 배우 전지현은 눈밭에서 올림푸스 뮤 카메라를 들고, 눈보다도 더 하얀 웃음을 지어가며 우리의 낭만을 자극했다. 덕분에 올림푸스는 전지현에게 들인 출연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디지털 일안 반사식 렌즈, 흔히 말해 DSLR 카메라가 등장하자 비싼 가격대에 발맞춰 광고도 좀 더 묵직해졌다. 소지섭은 소니 카메라를, 비는 니콘 카메라를 들고 세계를 누비며 전문가보다도 더 노련하고 현란한 자세로 셔터를 누른다. 렌즈도 마음대로 바꿔 끼울 수 있고 해상도도 월등한 DSLR 한 대만 손에 넣으면 당신도 지금 바로 월드스타 못지않게 폼 나는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광고는 우리의 지름신을 부추긴다.
이제 사진기는 연애시절 패션소품이거나 신혼여행을 위한 혼수품으로 자리 잡았고, 좀 늦더라도 첫아이를 낳을 때쯤에는 꼭 손에 넣어야 하는 생필품이 됐다. 이에 발맞춰 사진 강좌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오고, 사진과 관련한 파워 블로거들이 속출했다. 사진 애호가들에게는 ‘생활사진가’라는 호칭이 붙었다. ‘일상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사진가’라는 이름이 ‘아마추어’라는 이름보다 훨씬 그럴싸하게 들리기는 한다.
디카는 참으로 똑똑하고 중독성이 강한 기계다. 굳이 노출이며 초점을 몰라도 어지간한 것은 기계가 다 알아서 해준다. 더 노골적으로 말해 누르기만 하면 작품이 된다. 필름을 갈아 끼워야 하는 부담도 없고, 현상이나 인화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원하는 만큼 찍고, 고르면 된다. 그러나 언제나 성숙하지 못하면 이 무제한의 자유 앞에서 문제에 봉착한다.
꽃피는 봄날, 아이와 함께 한강 선유도공원에 나가 정신없이 눌러댄 수백장의 사진을 어디에 쓸 것인가. 카메라는 아이의 울고, 웃고, 짜증내는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지 몰라도 정작 셔터를 눌러대던 부모들은 아이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무심히 즐겨본 기억이 없다. 어린시절 운동회 날 옆집 사진기를 빌려 찍은 사진 한 장은 노출 초점이 모두 무시됐어도 액자에 모셔졌지만, 이제 디카로 찍은 사진은 컴퓨터 외장 하드 속에 잠들어 있다.
그나마 선유도 정도는 경제적이지만 모처럼 벼르고 별러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나 필리핀 보라카이로 3박4일 휴가를 다녀왔다 하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구경하기도 빠듯한 일정 속에서 출발 전 인천국제공항 기념사진부터 시작해 기내 식사, 호텔 방안까지 담은 사진은 그야말로 지난 휴가 때 우리가 한 일을 모두 알고 있다.
미국 비평가 수전 손탁은 노동에 길들여진 사람일수록 여행지에서도 카메라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일이야 말로 의미 있다는 노동윤리가 휴가지에서조차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오직 사진으로 기록된 것만이 진정한 경험이라는 착각뿐이다.
<포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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