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동결딱지 붙일 때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난 북한에서 이렇게 쫓겨왔다” 금강패밀리비치호텔 총지배인 홍준표
호텔을 닫고 철수하려면 물부터 말려야 했다.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가장 먼저 문제를 일으키는 게 물이다. 여름엔 썩고, 겨울엔 얼어서 배관을 터뜨린다. 객실 난방용 배관의 물이 문제였다.
기계실 온수탱크 밸브를 열고, 그것만으론 안심이 안 돼 공기압축기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빼냈다. 남아 있던 직원 셋이 96개 객실 배관에서 물을 없애는 데 꼬박 이틀 걸렸다.
지난 두 차례 겨울, 호텔은 손님이 하나도 없었지만 난방을 멈추지 않았다. 내일이라도 손님이 올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못했다. 기름값만 매달 300만∼400만원씩 들었다.
북한 금강산 해수욕장의 금강패밀리비치호텔 총지배인 홍준표(43)씨는 지난달 27일 자정 무렵 겨울에도 하지 않던 객실 배관 물 빼기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날이 밝으면 북한 측에서 호텔을 ‘동결’하러 온다. 잠이 오지 않았다.
노다지 금강산
1997년 외환위기는 홍씨 직장도 삼켰다. 식음료 파트에서 일하던 대구 금호호텔이 다음해 부도가 났다. 절망하던 31세 청년에게 마침 시작된 금강산관광이 일자리를 제공했다. 금강산 유람선 봉래호 레스토랑의 감독관이 됐고, 1년 뒤 취항한 3호 유람선 풍악호의 매니저로 승진했다.
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해 2001년 6월 현대 측은 쾌속선 설봉호만 남기고 유람선을 모두 없앴다. 홍씨도 배에서 내려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음식체인점에서 일하던 2008년, 유람선 동료 중 현대아산 직원이 된 친구들이 찾아왔다. “금강산관광, 정말 유망해. 고생하지 말고 돌아와.”
“금강산에는 좋은 기억이 많았어요. 외환위기 때 나를 구해준 곳이니까. 힘들 때마다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어요. 그곳에 가면 다시 행복해질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2008년 5월, 현대아산 협력업체 일연인베스트먼트의 금강패밀리비치호텔 총지배인으로 10년 만에 찾은 금강산은 딴 세상이었다. 만선 고깃배가 쏟아내는 물고기처럼 관광객이 밀려들었다. 객실 예약률은 항상 90%를 웃돌았다. 매일 300여명이 그의 호텔에 머물렀다.
2008년은 금강산관광이 절정에 이르던 때다. 연간 기준 34만8000명의 역대 최다 관광객을 동원한 2007년 월별 실적을 1월부터 매달 갈아 치웠다. 손님은 현대아산이 알아서 끌어다줬고, 골프장이 완공됐고, 자가용 관광까지 곧 시작된다고 했다. 그는 “완전히 노다지였다”고 말했다.
당시 홍씨 회사는 수고가 많다며 직원들을 단체로 홍콩에 데려갔다. 사업이 잘되자 “더 잘해보자”고 격려하기 위해 해외 워크숍을 떠날 만큼 회사도, 직원들도, 홍씨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충격적인 사건이…
“오전 7시쯤이었을 거예요. 가이드가 손님들을 버스에 태워서 금강산에 들어가려 하는데….”
호텔 손님 중 한 명이 사라졌다. 홍콩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7월 11일 아침. 일행도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는데 홍씨는 놀라지 않았다. “언론에 보도되진 않았지만 금강산에선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았어요.” 현대아산에 알리고 사라진 손님을 찾아 나섰다.
‘신원미상의 여자 사체가 발견됐다. 확인하러 오라.’ 오전 9시30분 현대아산을 통해 북한 측이 알려 왔다. 사라진 손님, 박왕자(당시 53세·여)씨였다.
“해안 백사장이 철책을 따라 둘로 나뉘어 있어요. 철책부터 호텔 쪽으론 해수욕장이고, 저쪽은 군사지역이에요. 그런데 썰물 때 물이 빠지면 철책선이 닿지 않아 두 구역 경계가 모호한 모래밭이 드러나요. 별 생각 없이 걷다 보면 군사지역으로 들어서기 쉽죠. 예전에도 손님이 실수로 경계를 넘어갔다가 억류된 일이 종종 있었대요. 대개 남자 손님들인데, 북측 초병에 잠시 억류됐다가 현대아산이 데려와 해프닝으로 끝나곤 했다는 거죠. 그런데, 박왕자씨는….”
북한은 ‘도주했기 때문에 총을 쐈다’고 했고, 한국 정부는 ‘정지해 있거나 천천히 걷던 중 총격을 받았다’고 했다. 금강산관광은 적어도 표면적으론 2년째 좁혀지지 않는 이 간극 때문에 좌초했다.
박씨 사건 다음날부터 정부는 금강산관광을 중지시켰다. 하루 평균 1500명이 찾던 곳에서 신기루처럼 모든 게 사라졌다. 텅 빈 호텔엔 직원들만 남았고, 협력업체는 북측과 직접 대화도 할 수 없었다. 초조한 기다림이 시작됐다.
일연인베스트먼트는 이 호텔 외에 다른 사업장이 없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며 수입은 사라졌는데 지출은 계속됐다. 60명이던 호텔 직원은 1년 만에 홍씨를 포함해 세 명으로 줄었다. 이후 1년 10개월간 총지배인 월급은 채 200만원이 되지 않았다. 따질 곳도 없었다.
‘다음달이면 되겠지’ 희망은 고문이다
매일 아침 96개 객실 창문을 열었다가 저녁에 닫는 일상이 시작됐다. 손님이 없어도 환기는 해야 하고, 청소도 거를 수 없다. 손님 있을 땐 하기 힘든 페인트칠이나 장비 손질이 주 업무가 됐다.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이 발생했을 때도,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도 관광은 계속됐다.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금강산관광의 역사는 홍씨에게 “내일이라도 당장 손님이 올 것만 같은” 희망을 줬다. 그러나 하루하루 지날수록 고문으로 바뀌어갔다.
회사가 호텔을 포기하지 않는 한 총지배인을 불러들이는 일은 없다. 따라서 사표를 내지 않는 이상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사실상의 귀양살이. 그는 “유배지에서 책 500권을 썼다는 정약용 선생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고 했다.
중국동포 직원들은 해금강 호텔 뒤편에서 바다낚시로 소일했다. 홍씨는 “동료가 대부분 해고된 현대아산과 협력업체 한국 직원들은 헬스장에서 미친 듯이 운동만 했다”고 말했다. 매주 목요일 노정(路程)답사가 바람 쐬는 유일한 기회였다. 금강산 등산로가 제대로 돼 있는지 점검하는 일이다.
관광은 멈췄지만 북측 사람들과 사적인 교류는 계속 이어졌다. 하루는 북측 세관원 2명이 호텔로 홍씨를 찾아왔다. 주차장 뒤편으로 은밀히 불러내 주머니에서 지폐를 한 장 꺼내더니 “이거 1만 달러짜리 맞지요?”라고 물었다. 한국 나이트클럽에서 나눠주는 홍보용 가짜 돈이었다.
“남한에 있는 분들은 북한과 무슨 일만 터지면 금강산에 있는 사람들 걱정하는데, 금강산에 있으면 오히려 평화로워요. 원래 호랑이 입속이 제일 안전하잖아요.”
금강산은 그런 곳이었는데, 지난 2월 금강산·개성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당국간 실무회담이 결렬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북측은 3월 4일 “남한 당국이 관광을 막으면 사업계약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지난달 27∼30일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정부 자산 몰수와 민간 자산 동결 조치를 취했다.
“제가 접한 북측 사람들은 남한 일을 거의 실시간으로 아는 것 같았어요. 천안함 침몰 때는 별 반응이 없었어요. ‘잘 돼야 하는데 또 이런 게 터져서 어떡하냐’는 식의 얘기만 들었죠. 대신 통일부 논평이나 이명박 대통령 발언에는 아주 민감해요. 얼마 전 이 대통령이 김일성 생일 폭죽 얘기를 했을 때는 (한국 직원을) 볼 때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지더군요.”
인생 걸었는데 신기루처럼 사라져
기계실 물탱크에는 냉수 10t이 담겨 있었다. 날이 더워지면 썩을 수 있다. 홍씨는 탱크를 완전히 비웠다. 난방용 경유는 디젤 자동차마다 채워 넣고, 남은 것은 통에 담아 호텔 지하에 쌓았다.
호텔에는 창고도 많다. 침대시트나 베갯잇을 쌓아두는 창고, 객실 소모품 창고, 주류 창고, 공구 창고…. 하나씩 돌며 물품명을 적고 수량을 확인했다. 물품 상태를 증거로 남기기 위해 사진도 찍었다.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홍씨는 속으로 울었다.
28일 오전 9시. 군인이 포함된 북측 부동산 조사팀이 호텔에 왔다. 20명 정도. 홍씨는 그들을 안내하며 모든 문이 잠긴 걸 확인시켰다. 빨간색 ‘X’표 위에 ‘동결’이란 글자를 새긴 스티커가 문마다 붙었다. 조사원들은 “동결까지 하게 된 건 남측 정부 때문이니 남측에 가서 배상 받으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참담했습니다.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2년 가까이 매일… 당장 손님이 와도 괜찮도록 객실에 먼지 하나 없이 쓸고 닦았는데… 다음달엔 되겠지, 다음달엔 되겠지 하면서 빈집을 그렇게 관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기다렸는데, 그걸….”
문이 굳게 잠긴 호텔을 뒤로 하고 그날 남쪽으로 돌아왔다. 작은 등산용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읽던 책, 사진첩, 등산복, 겨울옷, 면도기, 여행용 트렁크 등 모두 호텔 숙소에 놔둔 채 간단한 여름옷만 챙겼다. 흔적을 남겨 놓고 싶었다. “금강산에 남겨둔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고도 했다.
다시 갈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는 “금강산관광이라는 게 끝날 것 같다가도 좋아지면 또 순식간이거든요”라고 말한다. 홍씨의 금강산은 신기루와 현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대구=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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