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K5가 현대 YF쏘나타를 잡아먹는다?… ‘카니발리제이션 마케팅’

기아자동차가 현대차를 잡아먹고 있다? 지난달 신형 YF쏘나타의 내수 판매는 3월보다 23.6% 줄었다. 현대차 전체 내수 판매 실적이 14.4%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감소 폭은 배 가까이 된다. 쏘나타가 지난해 9월 출시 이후 현대차 내수 판매를 이끌어왔던 점을 감안하면 부진의 늪에 빠진 셈이다.

그러나 이는 현대·기아차그룹의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자기잠식) 마케팅 전략.

그룹 주력 차종에 대항할 수 있는 또 다른 경쟁 차종을 출시해 전체적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한 지붕 두 가족 브랜드인 기아차가 K5를 출시하면서 시장지배력을 높였고, 중대형 시장에서 새 강자로 부상한 것이다.

◇카니발리제이션 마케팅 전략=쏘나타와 K5의 관계처럼 특정 기업의 새로운 제품이 기존 제품과 직접적으로 점유율 경쟁을 펼치는 것을 ‘카니발리제이션’이라고 부른다. 원래 식인종이 자신의 종족을 잡아먹는 것을 뜻하는 말로 새 기술이나 제품 도입으로 인한 경쟁으로 수익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현상은 최근 신제품 출시 사이클이 점차 짧아지면서 더욱 자주 일어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경쟁적으로 3차원(D) TV를 내놓고 집중적인 마케팅을 펼치면서 상대적으로 지난해까지 최고 제품 대우를 받던 LED TV 판매가 주춤해진 상태”라고 말했다.

애플의 태블릿PC ‘아이패드’와 아이폰 역시 카니발리제이션 마케팅 형태. 업계 관계자는 “아이패드는 화면이 커진 아이폰”이라며 “때문에 아이패드의 경쟁자는 다른 회사의 태블릿PC가 아니라 멀티태스킹 기능 등이 추가돼 더욱 강력한 성능을 내는 4세대 아이폰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KT는 카니발리제이션 때문에 고민이다. 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까지 도입할 경우 삼성전자와의 관계가 극도로 나빠질 수 있다. 현재 KT는 삼성전자의 넷북과 와이브로를 묶은 상품을 팔고 있는데 아이패드를 도입할 경우 아이패드가 기존 넷북 상품 시장을 잠식할 수밖에 없다.

◇카니발리제이션 독(毒)이자 약(藥)=카니발리제이션은 회사의 수익을 떨어뜨리는 요인이지만 기업에 주는 교훈도 분명히 있다. 현재에 만족해서는 안 되고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는 것. 자기잠식에 대한 두려움 탓에 신제품 출시를 피했다간 순식간에 시장에서 뒤처지고 만다. 독점 시장이 아닌 이상 늘 새로운 경쟁자와 경쟁 제품은 출현하기 때문이다.

PC 운영체제로 도스(DOS)를 쓰던 시절 IBM은 PC의 절대 강자였지만 자기잠식을 두려워한 나머지 소프트웨어 시장을 무시하다 평범한 하드웨어 조립 업체로 전락했고 결국 PC사업부를 매각하고 말았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이 일반 휴대전화 시장을 잠식할 것을 우려, 스마트폰 시장에 일찌감치 뛰어들지 않았다가 안방인 국내 시장에서 아이폰에 밀리는 굴욕을 겪었다.

하지만 TV 분야에선 올해 3D TV를 내놓으며 지난해 이룩한 LED TV 시장을 스스로 흔들고 있다. 잠식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도는 중국 노동절 연휴 사흘 동안 중국에서만 3D TV 3000대를 파는 등의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기잠식에 대한 두려움을 떨친 ‘창조적 파괴’를 시도하느냐 여부가 일류 기업과 평범한 기업을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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