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목회자의 꿈은 아픔 뒤 찾아온 희망… 55살에 감신대 1학년 원영호 사모의 사연
강의실을 빠져나오는 젊은 대학생들 틈으로 걸음이 느린 중년 여성이 보였다. 학생들이 그를 보고 “이모님” “사모님”이라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충북 청원군 푸른감리교회 김병진 목사의 아내 원영호 사모. 55세의 나이로 감리교신학대학교 10학번이 된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냉천동 감신대에서 만났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만학의 길을 선택하기까지 사연을 들었다.
2003년 12월 26일은 몹시 추운 날이었다. 충북대 1학년인 아들 요한군은 겨울방학이라 집에 내려와 있었다. 김 목사와 요한군은 그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어느 목사의 부탁으로 교회 보수공사를 도와주러 갔다. 그런데 점심 무렵 김 목사가 끼니를 때울 우동을 사러 갔다 오니 아들은 보이지 않고, 부자가 작업하던 곳은 흙더미로 덮여 있었다. 요한군은 그 속에서 날씨보다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 원 사모는 뒤늦게 병원 영안실에 눕혀 있는 아들을 보고 숨이 막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요한군 시신은 모교 의과대에 기증됐다. 그리고 2년쯤 뒤 요한군의 시신을 화장했다는 통보가 가족들에게 왔다.
7년 전 일이지만 그때의 아픔은 전혀 풍화되지 않은 듯했다. 원 사모는 어렵게 아들의 얘기를 이어가며 붉어진 눈으로 한참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아들이 죽고 난 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원래하던 사업이 망하고, 저는 그 빚을 갚느라 8년간 호떡 장사를 하면서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한 아들인데…. 마음속이 온통 증오와 분노, 상실감으로 가득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저 같이 부족한 종에게 어찌 이런 감당하지 못할 시련을 주십니까’ 하고 하나님도 원망했습니다.”
고통의 나날이 계속될 줄 알았던 어느 날, 원 사모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귓가가 아니고 마음 깊은 곳에서 탄식처럼 들려왔다고 한다.
“네 아들의 육신보다 나를 조금만 더 사랑할 수는 없겠니?”
그 말은 희망이 됐고, 그를 돌아보게 했다. 이후 슬픔이 몰려올 때면 원 사모는 “하나님, 사랑해요”를 되뇌며 힘을 냈다.
원 사모는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뭔가 몰두할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아들이 못 끝낸 대학도 가고 싶었다. 2006년 봄 그는 대전에 있는 한 평생교육시설에 입학, 4년간 청원과 대전을 기차로 오가며 공부한 끝에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본 뒤 감신대에 지원, 합격했다.
원 사모는 현재 월∼목요일은 학교 기숙사에서 21세의 여학생과 함께 산다. 목요일 오후나 금요일 오전이면 교회로 내려가 주일 저녁까지 사모로 사역하고, 월요일 새벽 다시 상경한다. 남편 김 목사는 동네 이장으로, 원 사모는 부녀회장으로도 활동한다.
“남편과 지난해 결혼한 딸아이의 응원과 희생이 있었기에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부족한 사모를 둔 성도들에게도 미안하고, 마을 어르신들께도 죄송하고.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지요.”
원 사모는 목회자의 길을 꿈꾸고 있다. 누구보다 힘든 7년을 보내고 더 큰 꿈을 향한 출발선상에 선 것이다.
“저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가 희망을 봤잖아요. 세상의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희망이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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