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계획을 세우는 신앙인의 자세
야고보서 4장 13~17절
오늘 본문에 나온 상인들은 먼저 어디에 가서, 얼마 동안 머무르며, 얼마나 돈을 벌 것인가 등의 기대감에 부풀어 계획을 세웠습니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야고보는 건전한 사업을 계획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강조하는 점은 모든 계획마다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5)
우리는 작은 계획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시간을 내어 하나님과 하루 일과를 상의하십시오. 여러분의 목표가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이렇게 할 때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여러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는 있어도 그것에 대해 스스로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14절·눅 12:16∼21 참조). 인생을 정확히 보는 사람만이 인생의 제한적이고 연약한 점을 깨닫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14절).
인간의 생명은 문자 그대로 잠시 존재하는 현상이며, 또한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입니다. 성경에는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하는 비유가 많이 있습니다. ‘기울어지는 그림자’(시 102:11) ‘한 호흡’(욥 7:7) ‘사라져 없어지는 구름’(욥 7:9) ‘들의 꽃’(시 103:15) 등입니다.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할 때, 기독교인은 어떤 자세로 미래를 계획해야 하겠습니까? 쾌락주의자들은 “내일 죽을 것이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전 15:32 참조)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허무주의자들은“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하며, 실존주의자들은 “인생은 본질이 없어 계획을 세울 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독교인의 진정한 자세는 무엇입니까? 기독교인의 자세는 순종입니다.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15절). 기독교인은 모든 계획 앞에 “주의 뜻이면…”이라는 단서를 세워야 합니다.
바울은 계획을 세울 때마다 이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고전 4:19, 16:5∼7, 롬 15:28 참조). 그러나 이런 단서를 굳이 말로는 표현하지 않는다 해도 그런 자세를 실제로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하간 기독교인들이 이 문구를 현재보다는 더 자주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인간적인 확신에서 건강이나 재산, 생명 등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다고 믿을 때 교만이 싹틉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이생의 자랑’(요일 2:16)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교만한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명령을 경홀히 여길 수 없는 것은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이기 때문입니다(17절).
그렇다면 그 뜻은 하나님을 제외시킨 상태에서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지 않는 죄도 무엇을 하는 죄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계획할 때는 반드시 주의 뜻 안에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고 순종함으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주님 뜻을 헤아리고 범사에 순종함으로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종만 목사 (대전 대흥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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