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림 시인 별세 “마침내 쓰기를 그만두고 강으로 나갑니다”
4·19세대 문인으로 꼽히는 최하림 시인이 22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양평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71세.
1939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64년 ‘貧弱(빈약)한 올페의 回想(회상)’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60년대 김현, 김승옥, 김치수 등과 더불어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했다. 60∼80년대 엄혹한 현실을 지나면서 때로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응시하고, 때로는 한발 물러서 관조함으로써 순수와 참여의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시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76년 첫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를 시작으로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풍경 뒤의 풍경’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 등 일곱 권의 시집을 냈다. 이를 통해 80년 5월 광주에서 드러난 이 시대의 정치적 폭력과 인간성 상실을 죄의식으로 형상화하기도 했고, 자연의 생명력을 경탄하거나 죽음의 이미지를 탐구하기도 했다.
2002년 경기도 양평에 정착한 고인은 지난해 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다. 올 2월 출간된 ‘최하림 시전집’ 서문에서 그는 삶의 끝자락을 응시하는 듯 이렇게 담담히 읊조렸다.
“마침내 나는 쓰기를 그만두고 강으로 나갑니다. …죽은 자들과 대면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나는 흐르는 물을 붙잡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내 시들은 그런 시간을 잡으려고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특히 암 투병 중에 발표한 시편들은 마음의 파동에 기대어 순수한 내면의 부름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내는 층계참에 쭈그려 앉고 나는 창가에 앉았다 바람이 부는지 창밖에서는 구름이 이동하고 또 이동했다(중략) 책상 위에 한 권 한 권 제 자리에 꽂고 있는 동안에도 어디 먼 데서 손님이 오고 계신지 마음이 흔들리고 유리창들도 덜커덩거렸다”(‘어디서 손님이 오고 계신지’ 일부)
고인은 서울예술대 강단에 서면서 장석남 이진명 이승희 박형준 이병률 이원 이향희 최준 등 문단 안팎에 제자들을 길러냈다. 제11회 이산문학상, 제2회 올해의 예술상 문학 부문 최우수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숙희(69)씨와 아들 승집, 딸 유정, 승린씨 등 1남2녀. 승린씨는 소설 ‘아홉 개의 숲’을 출간하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의 말처럼 화장될 예정이다. 장지는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 발인은 24일 오전 5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층 5호실(02-2258-5957).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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