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언론 ‘양날의 칼’… 익명 취재원

Է:2010-04-2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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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언론 ‘양날의 칼’… 익명 취재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 공격설과 같은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이라고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현재까지 발견된 파편은 모두 천안함 조각으로 판명됐고…”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농림수산식품부의 막걸리 건배주 채택 주장과…”라고 했다.

국민일보 4월 20일자 기사에는 이처럼 ‘관계자’ 18명이 등장했다. 여권 관계자, 검찰 관계자, 회사 관계자, 사법당국 관계자, 핵심 관계자 등 매일 각 신문 지면에 등장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여기 몇 가지 힌트가 있다.

“‘재’자만 좀 뺍시다.”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들은 취재원들로부터 가끔 이런 요청을 받는다. 기획재정부의 약어 ‘재정부’에서 ‘재’를 빼면 ‘재정부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가 된다.

정부는 청와대, 국무총리실, 17개 중앙부처와 산하기관, 감사원, 국가정보원, 각종 위원회를 포괄하는 용어지만 ‘정부 관계자’는 주로 중앙부처 공직자를 가리킨다. 민감한 발언이 신문에 실릴 때 소속 부처 관계자 대신 가장 포괄적인 정부 관계자가 되려는 이들이 많다.

기사 한 줄이 자칫 외교 마찰로 이어질 수 있는 외교통상부 기자단에는 취재원을 표기하는 룰이 있다. 공식 브리핑 발언은 실명과 직책을 모두 쓴다. 어떤 사안의 배경을 설명하는 백그라운드 브리핑 때는 ‘정부(외교부) 관계자’로 표현한다. 직책에 따라 장·차관급이면 ‘고위 관계자’, 실·국장급이면 ‘당국자’, 그 이하는 그냥 ‘관계자’다.

딥백 브리핑(심층 배경설명·Deep Background Briefing)일 경우엔 ‘관계자’도 쓰지 않는다. 따옴표 없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식으로 기사에 소화한다. 미국 언론도 국방·외교 관련 정부 취재원을 표기할 때 이와 거의 같은 룰을 적용한다.

관계자로는 취재원이 충분히 보호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외교소식통’이라고 한다. 전직 관리까지 포함하는 용어다. 북한 관련 기사에 등장하는 ‘대북소식통’도 통일부 공무원, 북한학과 교수, 대북사업 기업인, 탈북자 등을 총칭한다.

민감한 대형 사건을 다루는 검찰에도 관계자가 많다. 검찰의 ‘고위 관계자’는 통상 지방검찰청 차장검사 이상을 뜻한다. 서울중앙지검 서울동부지검 등 기관명을 쓰면 발언자가 쉽게 노출될 경우 ‘재경지검 관계자’란 표현이 등장한다. 수사와 관련해 가장 포괄적인 용어는 ‘사정당국 관계자’다. 여기엔 국정원, 검찰, 경찰, 청와대 민정라인, 국회 법사위원과 정보위원 등이 포함된다.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수석비서관들이다. ‘핵심 관계자’는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비서관을 가리킬 때도 있다. 핵심 관계자로 자주 인용돼 ‘이핵관’이란 별명이 붙었던 이동관 홍보수석은 지난해 10월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핵심 관계자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의 효성 그룹 수사에 관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 발언이 보도된 뒤 자신이 발언자로 지목되자 “앞으로는 민정라인 관계자, 정무라인 관계자로 써달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고위 관계자 ‘직급 하향 조정’ 상황을 겪고 있다. 시·도 교육청은 통상 부교육감 이상을 ‘고위 관계자’로 칭하는데 요즘은 국장급이 고위 관계자로 표기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선거법 위반으로 교육감직을 상실한 뒤 부교육감 대행체제가 계속되면서 ‘넘버 투’인 국장급을 고위 관계자로 표현하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

정치권에서 가장 많은 인사가 해당될 수 있는 표현은 ‘여권 관계자’다. 여기엔 여당 국회의원은 물론 여당과 관련된 원외 인사, 청와대 관계자까지 포함된다. 정당의 핵심 당직자는 주로 원내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등을 가리킨다.

경제면 기사에 나오는 ‘회사 관계자’는 홍보 담당 직원일 경우가 많다. 이들은 회사 입장을 언론에 설명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임원들과 달리 권한의 폭이 넓지 않아 실명 언급을 꺼리는 편이다.

‘관계자’는 신문이 가장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 중 하나다. 기사 신뢰도를 높이려면 실명 인용이 많아야 하지만, 그러자면 취재원에게서 얻는 정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신뢰도와 정보의 깊이 사이에서 줄타기하다 등장하는 관계자에겐 그래서 저마다 사연이 있다. 이런 식이다.

하남시 덕풍동 O부동산 관계자는 “주로 보상을 받는 현지인들이 주변 땅을 알아보러 다니면서 호가가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국민일보 4월 20일자 15면 ‘보금자리 땅값 요동’).

이 기사를 쓴 기자는 “부동산중개업자가 익명을 요청했다. 부동산 시세 언급은 중개업자의 고객인 주민들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파트 값이 떨어졌다’는 멘트가 실리면 그 아파트 주민들이 기자에게 전화해 부동산업소 이름을 따져 묻기도 한다. 실명이 보도되면 주민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을 수 있어 중개업자들은 대개 실명이 노출되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익명 취재원이 갖고 있는 ‘양날의 칼’은 양쪽 모두 현실화된 사례가 있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의 워싱턴포스트 취재원 ‘딥 스로트(Deep Throat)’는 대통령의 거짓을 세상에 알리며 역사상 가장 유명한 관계자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2003년 제이슨 블레어 기자의 기사 조작 사건을 고백하며 익명 취재원 표기를 최대한 줄이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이후 제2, 제3의 블레어 기자 사건을 겪으면서도 미국 언론은 ‘관계자’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a government official(정부 관계자)’ ‘a senior official(고위 관계자)’ 같은 표현이 기사에 등장한다. 대신 익명을 쓰는 이유를 첨부하고 있다. ‘여야 협상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익명을 요청한 정부 고위 관계자’라고 표기하는 식이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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