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은혜 (15) 노산, 손 제독에 ‘수향’이란 아호 지어줘
남편 손원일 제독은 1972년 한국홍보협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홍보협회장과 반공연맹 이사장을 겸임하며 분주하게 보내던 어느 날, 충무공사상연구소 이사장이던 노산 이은상 시인을 만나 점심식사를 했다. 남편은 그때 노산으로부터 ‘수향(水鄕)’이라는 아호를 받았다.
“당신은 우리나라 해군의 아버지이자 충무공 이순신의 진정한 후예야. 그래서 수향이야. 물이 고향이야.” 남편은 ‘수향’이라는 호를 참 좋아했다.
그는 수향처럼 물 흐르듯 인생을 즐겼다. 하지만 74년 초부터 건강이 나빠졌다.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해 음식을 절제해도 일주일만 지나면 얼굴과 손이 퉁퉁 부었다. 이 때문에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씩 피를 걸러내는 투석 치료를 받았다.
나는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좀 더 좋은 의료시설을 갖춘 미국 병원에서 치료받기 위함이다. 메릴랜드 주에 있는 베데스다 해군병원으로 갔다. 종합검사를 마친 미 해군병원 의사는 앞으로 6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했는데 말이다. 미국에서 6개월간 투석 치료를 받고 귀국했다.
하지만 남편의 투병생활은 고통스러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투석을 해서 몸속의 불순물과 부기를 빼냈다. 투석 후에는 안색이 좋아지고 체중이 정상으로 돌아오지만 며칠이 지나면 또다시 온몸이 부었다.
76년 1월 해군사관학교 개교 3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투석 날짜와 시간을 잘 조정해 나갔다. 그 행사가 손 제독이 참석한 해군에서의 마지막 공식 일정이었다. 그날 밤 나는 남편에게 반갑게 물었다.
“오랜만에 해군을 보니 어땠어요?”
“아무 것도 없었던 30년 전이 생각나더군. 이제는 모든 게 다 갖춰진 모습이야. 무엇보다 믿음직한 생도들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까지 확 트이는 것 같아.”
집에서 치료를 받던 손 제독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육군 군의관 한 명과 간호장교 한 명을 지원해 줬다. 그렇게 1년간 투석 치료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육군 군의관에게 말했다.
“언짢게 듣지 말고 병원장에게 한번 말씀드려 주시게. 해군에도 군의관과 간호장교가 많을 테니 해군으로 바꿔줄 수 있는지 말이야.”
바로 다음주부터 손 제독이 원한 대로 군의관과 간호장교가 해군으로 바뀌었다. 남편은 해군 군의관과 간호장교가 처음 치료를 위해 온 날 미소 띤 얼굴로 그들을 맞았다.
“주사 한 방을 맞더라도 해군에게 맞으면 내 마음이 편해.”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하던 투석 치료를 5일에 한 번, 나중에는 3일에 한 번씩 받았다. 투석이 끝나면 잠시 외출을 하곤 했다. 몸이 아픈 중에도 머리를 단정히 빗고, 전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신사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다. 신사는 정직한 사람이다. 신사는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신사는 맡은 바 책임지는 실력을 갖춘 사람이다.” 해군은 신사여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그는 투병 중에도 이 같은 신사 해군 정신을 잊지 않았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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