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선조들의 자화상과 만나다

Է:2010-04-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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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선조들의 자화상과 만나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심경호/이가서

“그는 물소 이마에 칼날 같은 눈썹을 하고 있으며, 눈동자는 검푸르고 귀는 하얗다. 홀로 우뚝한데다가 고매한 사람만 골라서 친밀하게 사귀고, 번잡하고 화려한 상황은 멀리서 보기만 해도 더욱 멀리했다. 그러므로 세상과 뜻 맞는 일이 거의 없어서 늘 가난했다.”

정조 연간에 한 시대를 울렸던 인물 박제가(朴齊家)는 26세 되던 해에 ‘소전(小傳)’이란 제목의 자서전에서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서얼 출신으로 출세 길이 막혔음에도 두루 사람을 만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제가는 “몸뚱이는 남아도 영구히 흘러가는 것이 정신이다. 뼈는 썩어도 영원히 남는 것이 마음이다. 그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아마도 생사와 이름을 초월한 곳에서 그 사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며 자신의 뜻을 후대가 알아줄 것을 기대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박제가가 쓴 박제가’다.

이처럼 선조들의 자전적인 서문을 모아 엮은 주인공은 심경호(55)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다. 그는 근대 이전 조선 시대 대표적인 선비들의 자서전적 글쓰기 양식을 모두 망라한 것은 물론 중인, 예술가, 영조대왕 등의 글까지 한데 모았다.

조선 21대 군주인 영조(1694∼1776)는 만년에 자신을 돌아보는 자서전적 시문을 많이 지었다. 1770년과 1773년에는 ‘어제자성옹자서’를 짓고 서책으로 인쇄, 배포하기도 했다. 영조는 생모 숙빈 최씨에게 다섯 번에 걸쳐 존호를 올린 사실을 먼저 적고, 그 아래서 다시 “아아, 무술년에 돌아가신 이후로 56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추존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지탱했으니 어찌 효라 하겠는가?”라고 탄식한다. 위에서는 생모를 자전(慈殿)이라 칭하고 아래에는 선비(先?)라고 적었다. 위는 자전의 추존이라는 공식행사를 적은 것이고 아래는 생모에 대한 불효의 회환을 적은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는 자서전 ‘백운거사전’에서 스스로를 백운거사라 칭한다. “백운거사는 선생의 자호다. (중략) 집에는 자주 식량이 떨어져서 끼니를 잇지 못했으나 거사는 스스로 유쾌히 지냈다. 성격이 소탈하여 단속할 줄을 모르며, 우주를 좁게 여겼다. 항상 술을 마시고 스스로 혼미했다.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 흔쾌히 그리로 가서 잔뜩 취해가지고 돌아왔으니, 아마도 옛적 도연명의 무리이리라.”

그가 이 글을 지은 때는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됐으나 한동안 관직에 나가지 못했을 때다. 세상 일이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일이 적은 젊은 시절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당나라에 유학했던 신라의 최치원은 어려운 시절 당나라에서 호구지책으로 한 장수의 군막에 붙어 생활하던 시절을 공자의 선조인 정고보의 일화에 빗대어 “‘여기서 된 죽도 먹고 여기서 묽은 죽도 먹는다’는 말처럼 살았습니다”라고 적었다. 신라 헌강왕에게 ‘계원필경’과 함께 바친 ‘계원필경서’의 내용이다. 그가 당나라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삶을 지내야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선인들은 자서전적 시문에서 어두운 자아와 밝은 자아의 대립과 같은 내면의 모순을 직접적으로 반추하지 않는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웃음, 허무에 대한 인식, 비애의 감정을 분석해서 표면에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의 궤적을 스케치하거나 연표 형식으로 제시하면서 자기 삶을 응시하는 관점을 가탁해두고, 자기 삶을 몇 마디 말이나 문장으로 개괄했다. 따라서 문체는 대단히 정제되어 있고 의미는 함축적이다. 그것은 선인들이 지향한 삶과 닮아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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