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귀히 쓰임 받는 그릇
디모데후서 2장 20∼21절
사도행전 9장에는 살기등등한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해 예루살렘으로 압송해 오려고 다메섹으로 내려가던 중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그를 회심시키는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행전 9장 15절에 밝혀져 있습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아나니아가 사울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기를 주저하고 있을 때 주님은 그가 오늘은 핍박자이지만 내일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 24절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을 그릇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두 말씀을 종합해보면 복음의 사역자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릇입니다.
오늘 본문 디모데후서 2장 20절은 “큰 집에서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릇이 어디에 사용되느냐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보죠. 바로 그곳을 ‘큰 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큰 집이란 일차적 의미는 문자 그대로 부유한 가정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부잣집에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어릴 적 집안에 어떤 행사가 있게 되면 항상 부잣집에 가서 그릇을 빌려왔습니다. 빌린 그릇을 깨끗이 씻은 뒤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언급한 큰 집은 단순히 부유한 가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 의미는 하나님의 교회를 뜻합니다. 그리고 큰 집으로 비유된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다양한 그릇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모든 그릇들이 다 귀하게 쓰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그릇, 쓰심에 합당한 그릇은 깨끗합니다.
그릇이 많다고 다 귀하게 쓰임받는 것은 아닙니다. 금이나 은으로 된 그릇이라고 반드시 귀하게 쓰이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금이나 은그릇이라 할지라도 그 안이 더러우면 귀하게 사용될 수 없습니다. 반면 나무와 질그릇이라도 그 안이 깨끗하면 귀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느냐보다 얼마나 깨끗한가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는 그릇은 거룩한 그릇입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는 애굽 왕자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혈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살인죄를 짓고 쫓겨나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용광로와 같은 연단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됐을 때 하나님은 비로소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사용하셨습니다. 다윗 왕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받아 쓰이기까지 13여년간 온갖 고난의 풀무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실력 학력 재력 능력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거룩입니다. 스승의 날 한 설문조사에서 ‘어떤 교사가 기억에 남는가’란 질문에 “잘 가르친 교사보다는 인격이 뛰어난 교사가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습니다. 반대로 교사들에게 기억에 남는 학생은 공부를 잘한 학생보다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동역자입니다. 모두가 성결한 그릇이 돼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중선 목사 (부천 한마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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