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소설집 ‘고백의 제왕’… 가상과 현실, 존재와 비존재 넘나드는 이미지

Է:2010-04-2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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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소설집 ‘고백의 제왕’… 가상과 현실, 존재와 비존재 넘나드는 이미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기괴한 이미지와 마주치고, 뭔지 모를 일그러진 기분을 느낀다. 이장욱(42)의 소설집 ‘고백의 제왕’(창비)에는 기묘한 이미지가 넘쳐난다. 이곳에서는 현재와 가상의 경계가 모호하며 존재와 비존재가 겹쳐진다.

예를 들어 단편소설 ‘변희봉’에서는 영화 ‘플란다스의 개’ ‘괴물’ 등에서 맛깔나는 연기를 펼친 배우 변희봉이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는 주인공 만기의 눈에만 보인다. 병석에서 아버지를 잃고 아내와 이혼한 만기는 일상에서 변희봉을 마주친다. 포장마차, 재래시장, 결혼식장 등 삶 구석구석에서 변희봉이 출몰한다. 그때마다 만기는 반가움과 놀라움을 느끼며 변희봉을 아는 체 하려고 하지만 명배우는 만기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주변 사람들에게 변희봉 선생을 봤느냐고 되묻지만 만기를 미친 사람처럼 쳐다볼 뿐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플란다스의 개’ 경비원은 장항선으로, ‘괴물’의 아버지는 김인문으로 알고 있다. 이에 만기는 “밴히봉이란 삶은 정말 읎는 게 아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어딘지 삐끗해서, 쪼매 다른 세상으로 빠지들어간 기 아인가… 싶은 기”라며 자신의 정신을 의심한다. 그때 친구와 보던 야간 야구경기 중계에서 야구공이 사라지고 얼마 후 동대문운동장을 걷던 그들 앞에 야구공이 ‘툭’하고 떨어진다.

TV 속의 야구공이 내 발 앞에 떨어지고, 영화 속의 배우가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세계. 가상과 현실이 어그러져 있는 공간은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만기의 고백이 너무나 생생해서 기묘한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들리지 않는다.

‘동경소년’에서 실재하는 비존재는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 ‘유끼’로 분한다. 이야기는 한 남자가 도쿄 뒷골목의 허름한 여관에서 “그런데…나의 유끼는…정말 죽은 걸까요”라고 입을 열면서 시작된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 ‘유끼’와 만나게 된 계기를 털어놓는데 그 분위기가 기담(奇談)같다. 그럴 것이 여인 ‘유끼’가 남자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 같기 때문이다. 그녀는 ‘편의점 점원은 알아채지 못한 존재’이고 ‘사슴들 사이를 거닐다가 자주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유끼’는 점점 희미해지다가 어느 순간 사라짐으로써 외로운 사랑은 끝난다.

‘유끼’는 실제 존재한 사람일 수도 있고 단순히 남자의 상상일 수도 있다. 또한 예전에 남자와 사랑했으나 현재는 추억 속에만 남은 잔상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유끼’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우리 곁에 실재하는 비존재의 위력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그림자와 대화하며 그를 추억하기도 하고, 기억 속 이미지를 떠올리며 새로운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림자와 환영은 언제나 ‘현재’하고 있다.

소설집 제목과 같은 ‘고백의 제왕’에서는 ‘고백’이란 화법을 통해 비존재의 영역이 현실로 파고든다. 금기된 행위를 고백해온 ‘곽’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곽’은 마음 속의 어두운 부분을 태연하게 들춰내는 ‘고백의 제왕’이다. 그는 중3때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와 첫 경험을 치른다. 문제는 아주머니가 환갑을 넘기고 폐경된 여인이라는 점. 금기시돼온 외설은 좌중을 얼어붙게 하는데, 어느 누구도 그에게 ‘진짜냐’고 묻지는 않는다.

‘곽’의 고백은 계속된다. 아버지에게 식칼을 들고 달려들고, 누이를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신기한 점은 ‘곽’의 믿기 어려운 고백에 청중은 은밀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남학생들은 그들이 선망하던 여학생 J와 동침했다는 ‘곽’의 고백에 격분하며 욕을 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개인적으로 ‘곽’을 만나 고백을 교환하고 있었다. ‘곽’의 고백이 지닌 마력은 무엇일까.

평론가 권희철은 “‘고백의 제왕’에 실린 작품들을 펼칠 때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혼란과 함께 기이한 전율을 느끼는 것은 저 불가능성의 지평과 비존재의 영역 때문이 아닐까”라며 “여기에 있는 것은 오로지 비존재들이 존재의 영역으로 불쑥 튀어나와버린 난처함,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악마적 미소”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아르마딜로 공간’ ‘기차 방귀 카타콤’ ‘곡란’ ‘밤을 잊은 그대에게’ ‘안달루씨아의 개’에서도 환영과 그림자의 대화는 계속된다. 이장욱은 시, 소설, 평론을 넘나드는 전천후 문학인으로, 2005년 장편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로 문학수첩작가상을 수상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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