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부정에 항거한 민주화운동 50년 조명… K1TV ‘4·19세대의 증언’
우리 헌법은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고, 최초의 국민저항권이 행사된 4·19혁명이 50주년을 맞는다. KBS 1TV 스페셜 ‘4·19세대의 증언’은 독재와 부정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 50년을 살펴본다. 1부 ‘광장에서 핀 장미’(17일 오후 8시)와 2부 ‘아버지의 길’(18일 오후 8시) 두 번으로 나눠 방영된다.
지난 11일, 경남 마산 중앙부두 앞 바닷가에서는 김주열 열사의 범국민 장례식이 열렸다. 1960년 4월 11일 김주열 열사가 최루탄이 얼굴에 박힌 채 시신으로 바다에 떠오른 지 꼭 50년이 흘렀다. 이를 계기로 촉발된 민주화운동은 우리 시대의 밑거름이 됐다.
김주열 열사의 죽음은 4·19혁명으로 절정에 이르렀고, 거리에서 쓰러진 민중의 희생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정권교체를 이끌어낸다. 1부는 올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면서 새로이 조명되고 있는 마산 3·15의거, 그리고 4·19혁명 세대들의 증언으로 그날의 광장이 안고 있는 기억을 재구성했다.
2부 ‘아버지의 길’은 4·19혁명 이후 산업화 현장에 뛰어든 아버지들의 인생을 조명한다. 이들은 외화벌이에 도움이 되는 코트 공장, 광부, 건설현장 등에 파견돼 한국 경제성장을 견인했다.
쥐 모피 공장을 운영한 김영표씨는 50년 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3·15부정선거 재실시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한 뒤 정치깡패에게 머리를 맞고 실신했다. 혁명은 성공했지만 그의 현실은 고달팠다. 광산, 농장, 공장을 전전하다보니 어느새 50년이 흘렀다.
촬영감독인 김태우씨도 1960년 4월 정치깡패를 피해 다닌 신세였다. 혁명 이후 그는 신문에 파독 광부 모집을 보고 원서를 냈다. 목숨을 걸고 일한 3년 동안 모은 돈으로 카메라를 샀고 촬영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유혈 혁명으로 남편을 잃은 어머니들은 고된 노동으로 한 식구를 책임지는 가장이 됐다. 4·19혁명의 거리에서 남편을 잃은 김연이씨와 최화순씨는 하루 임금 2700원을 받기 위해,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 앞에서 청춘을 보냈다.
당시 부상자를 병원에 옮기다 일주일간 구타당한 홍사성씨는 대학 졸업 후 시멘트 공장과 원자력 발전소 등 건설 현장에, 총상을 입은 동생의 수술실 앞에서 시를 쓰던 중학교 3학년 김동녕씨는 옷 공장을 세워 섬유 산업에 뛰어들었다.
민주화 투사였던 이들은 혁명 이후 산업화의 일꾼이 됐다. 방송은 투쟁의 상처를 마음 속에 새기고 견뎌온 50년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